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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밤, 나로도에서

좋은시& 시집

by 순한 잎 2006. 2. 6.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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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밤, 나로도에서

                              김사람



하늘

나로도의 겨울바닷바람이 머리를 사납게 풀어헤치고 미친년처럼 싸돌아다니 는 밤, 그래도 하늘은 한 점 동요 없이 잔잔하였습니다. 바람이 그러든 말든   하늘은 여전히 차게 맑았고, 아, 거기, 빙어 떼 같은 별들이 별들이 찰랑찰랑  물소리를 내며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투망을 던지면 맑은 물을 뚝뚝 흘리며   그물 가득 건져질 것 같은 그것들, 하얀 비늘을 반짝이며 파닥파닥 튈 것 같   은 그것들……. 나로도의 겨울 하늘은 물 반 별 반이었습니다.


다리


      섬과 육지가 은밀히 내통하는 다리를 건너면서

      나는 가슴이 뛰었습니다.

      첫눈이 와서 하늘 가득 안개꽃이 피어오르던 그 날처럼

      그대 마음 안을 처음으로 엿보던 그 날처럼

      가슴이 설레이었습니다.

      다리,

      내가 건널 수 없는 곳이기에 더욱 그리운 그곳을

      밤무지개로

      빙어 떼 같은 별 무더기로

      열어 주는 그대.



바람


      아무도 바람을 탓할 수 없습니다.

      죽어야 끝날 이 미친 마음을 내 어찌할 수 없듯이

      바람도 몸을 비울 무덤이 필요합니다.

      바람의 저 커다란 발걸음,

      무덤 찾는 저 슬픈 몸부림을

      우리는 아무도 탓할 수 없습니다.


      그대를 비워야합니다.

      아니 그대를 비웠습니다. 그런데

      그대 비워 가벼워야 할 이 발걸음

      왜 이리 무거울까요

      힘이 들까요.

      아, 빈 것은 이렇게 무거운 것이로구나.

      빈 것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로구나.


      달려가던 바람이 바다에 빠졌습니다.

      파랗게 자지러지는 겨울 바다

      이젠, 이제는 내가 바람입니다.



바다


      앞산이 화안해서 눈물 나고

      벚꽃이 피어서 또 눈물 나는 밤

      봄이 와도 봄이 없는 슬픔으로 절망스런

      불면의 밤이면

      나, 바다를 꿈꾸었듯이

      그대 또한 바다를 꿈꾸었으리.


      이 겨울

      내가 흘린 눈물로 세상이 다 젖는데

      돌아앉은 산들

      싸늘한 침묵…….


      바다는 비가 와도 젖지 않나니

      세상과의 불화도

      고단한 영혼도

      바다는 가슴 열어 받아들이리.


      내 눈물도

      그대 눈물도

      바다는 가슴 열어 받아들이리.

      내일 또 내일

      바다에서 우리는 하나 될 수 있으리.

 



      오리온

      이승에서 갖지 못한 작은 방 한 칸

      나, 죽어서 마련한 천상의 작은 방

      그대 위해 언제나 열어두지요.

      방안에 아직 남은 별 몇 개는

      나, 죽어서도 못 버리는 그리움 조각이겠지요.


* 여수에 눈이 많이 왔다고 합니다. 눈을 좋아하는 여수 사시는 형님이 보내 온 시! 

  김사람= 본명 김자환

               동화작가

              전남 순천 출생, 광주일보 신춘문예 동화당선  

              계몽아동문학상, 새벗문학상, 아동문예작가상 수상

              <노란 아주 작은 새>, <난 너하고는 달라>, <진욱이 안 미워하기>

              <여우고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꽃>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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