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밤, 나로도에서
김사람
하늘
나로도의 겨울바닷바람이 머리를 사납게 풀어헤치고 미친년처럼 싸돌아다니 는 밤, 그래도 하늘은 한 점 동요 없이 잔잔하였습니다. 바람이 그러든 말든 하늘은 여전히 차게 맑았고, 아, 거기, 빙어 떼 같은 별들이 별들이 찰랑찰랑 물소리를 내며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투망을 던지면 맑은 물을 뚝뚝 흘리며 그물 가득 건져질 것 같은 그것들, 하얀 비늘을 반짝이며 파닥파닥 튈 것 같 은 그것들……. 나로도의 겨울 하늘은 물 반 별 반이었습니다.
다리
섬과 육지가 은밀히 내통하는 다리를 건너면서
나는 가슴이 뛰었습니다.
첫눈이 와서 하늘 가득 안개꽃이 피어오르던 그 날처럼
그대 마음 안을 처음으로 엿보던 그 날처럼
가슴이 설레이었습니다.
다리,
내가 건널 수 없는 곳이기에 더욱 그리운 그곳을
밤무지개로
빙어 떼 같은 별 무더기로
열어 주는 그대.
바람
아무도 바람을 탓할 수 없습니다.
죽어야 끝날 이 미친 마음을 내 어찌할 수 없듯이
바람도 몸을 비울 무덤이 필요합니다.
바람의 저 커다란 발걸음,
무덤 찾는 저 슬픈 몸부림을
우리는 아무도 탓할 수 없습니다.
그대를 비워야합니다.
아니 그대를 비웠습니다. 그런데
그대 비워 가벼워야 할 이 발걸음
왜 이리 무거울까요
힘이 들까요.
아, 빈 것은 이렇게 무거운 것이로구나.
빈 것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로구나.
달려가던 바람이 바다에 빠졌습니다.
파랗게 자지러지는 겨울 바다
이젠, 이제는 내가 바람입니다.
바다
앞산이 화안해서 눈물 나고
벚꽃이 피어서 또 눈물 나는 밤
봄이 와도 봄이 없는 슬픔으로 절망스런
불면의 밤이면
나, 바다를 꿈꾸었듯이
그대 또한 바다를 꿈꾸었으리.
이 겨울
내가 흘린 눈물로 세상이 다 젖는데
돌아앉은 산들
싸늘한 침묵…….
바다는 비가 와도 젖지 않나니
세상과의 불화도
고단한 영혼도
바다는 가슴 열어 받아들이리.
내 눈물도
그대 눈물도
바다는 가슴 열어 받아들이리.
내일 또 내일
바다에서 우리는 하나 될 수 있으리.
별
오리온
이승에서 갖지 못한 작은 방 한 칸
나, 죽어서 마련한 천상의 작은 방
그대 위해 언제나 열어두지요.
방안에 아직 남은 별 몇 개는
나, 죽어서도 못 버리는 그리움 조각이겠지요.
* 여수에 눈이 많이 왔다고 합니다. 눈을 좋아하는 여수 사시는 형님이 보내 온 시!
김사람= 본명 김자환
동화작가
전남 순천 출생, 광주일보 신춘문예 동화당선
계몽아동문학상, 새벗문학상, 아동문예작가상 수상
<노란 아주 작은 새>, <난 너하고는 달라>, <진욱이 안 미워하기>
<여우고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꽃> 등 다수.
아득한 성자 (조오현) (0) | 2007.10.02 |
---|---|
수종사 풍경 & 유수종사기 (0) | 2007.04.23 |
말랑말랑한 힘 (함민복) (0) | 2006.03.25 |
한용운의 시 (0) | 2005.12.06 |
그해 겨울 (김종안) (0) | 2005.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