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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성자 (조오현)

좋은시& 시집

by 순한 잎 2007. 10. 2.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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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성자

 

                     -조오현-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아지랑이

 

나아갈 길이 없다 물러설 길도 없다

둘러봐야 사방은 허공 끝없는 낭떠러지

우습다

내 평생 헤매어 찾아온 곳이 절벽이라니

 

끝내 삶도 죽음도 내던저야 할 이 절벽에

마냥 어지러이 떠다니는 아지랑이들

우습다

내 평생 붙잡고 살아온 것이 아지랑이더란 말이냐

 

 

내 울음소리

 

한나절은 숲 속에서

새 울음소리를 듣고

 

반나절은 바닷가에서

해조음 소리를 듣습니다

 

언제쯤 내 울음소리를

내가 듣게 되겠습니까

 

 

새싹

 

하늘이 숨 돌린 자리 다시 뜨는 눈빛입니다

별빛이 흘겨본 자리 되살아난 불똥입니다

마침내 오월 초록은 출렁이는 파도입니다

 

 

그렇게 살고 있다 그렇게들 살아가고 있다

산은 골을 만들어 물을 흐르게 하고

나무는 겉껍질 속에 벌레들을 기르며

 

 

부처

 

강물도 없는 강물 흘러가게 해 놓고

강물도 없는 강물 범람하게 해 놓고

강물도 없는 강물에 떠내려가는 뗏목다리

 

 

책 끝에

 등걸불

  -시자에게

 

지금껏 씨떠버린 말 그 모두 허튼 소리

비로소 입 여는 거다, 흙도 돌도 밟지 말게

이 몸은 놋쇠를 먹고 화탕 속에 있도다

 

 

* 오현스님의 시집 < 아득한 성자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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