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성자
-조오현-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아지랑이
나아갈 길이 없다 물러설 길도 없다
둘러봐야 사방은 허공 끝없는 낭떠러지
우습다
내 평생 헤매어 찾아온 곳이 절벽이라니
끝내 삶도 죽음도 내던저야 할 이 절벽에
마냥 어지러이 떠다니는 아지랑이들
우습다
내 평생 붙잡고 살아온 것이 아지랑이더란 말이냐
내 울음소리
한나절은 숲 속에서
새 울음소리를 듣고
반나절은 바닷가에서
해조음 소리를 듣습니다
언제쯤 내 울음소리를
내가 듣게 되겠습니까
새싹
하늘이 숨 돌린 자리 다시 뜨는 눈빛입니다
별빛이 흘겨본 자리 되살아난 불똥입니다
마침내 오월 초록은 출렁이는 파도입니다
숲
그렇게 살고 있다 그렇게들 살아가고 있다
산은 골을 만들어 물을 흐르게 하고
나무는 겉껍질 속에 벌레들을 기르며
부처
강물도 없는 강물 흘러가게 해 놓고
강물도 없는 강물 범람하게 해 놓고
강물도 없는 강물에 떠내려가는 뗏목다리
책 끝에
등걸불
-시자에게
지금껏 씨떠버린 말 그 모두 허튼 소리
비로소 입 여는 거다, 흙도 돌도 밟지 말게
이 몸은 놋쇠를 먹고 화탕 속에 있도다
* 오현스님의 시집 < 아득한 성자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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