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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의 시

좋은시& 시집

by 순한 잎 2005. 12. 6.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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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비밀입니까 비밀이라니요 나에게 무슨 비밀이 있겠습니까

나는 당신에게 대하여 비밀을 지키려고 하였습니다마는

비밀은 조금도 지켜지지 아니하였습니다.

나의 비밀은 눈물을 거쳐서 당신의 시각으로 들어갔습니다.

나의 비밀은 한숨을 거쳐서 당신의 청각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밖에 비밀은 한 조각 붉은 마음이 되어서 당신의 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비밀은 하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비밀은 소리없는 메아리와 같아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나의 꿈

 

 

당신이 맑은 새벽에 나무 그늘 사이에서 산보할 때에,

나의 꿈은 적은 별이 되어서 당신의 머리 위를 지키고 있겄습니다.

당신이 여름날에 더위를 못 이기어 낮잠을 자거든, 나의 꿈은 맑은 바람이 되어서

당신의 주위에 떠돌겄습니다.

당신이 고요한 가을밤에 그윽히 앉아서 글을 볼 때에,

나의 꿈은 귀뚜라미가 되어서 책상 밑에서 '귀뚤귀뚤' 울겄습니다.

 

 

 

당신의 편지

 

 

당신의 편지가 왔다기에, 꽃밭 매던 호미를 놓고 떼어보았습니다.

그 편지는 글씨는 가늘고 글줄은 많으나, 사연은 간단합니다.

만일 님이 쓰신 편지이면, 글은 짧을지라도 사연은 길 터인데,

 

당신의 편지가 왔다기에 바느질 그릇을 치워놓고 떼어보았습니다.

그 편지는 나에게 잘 있느냐고만 묻고, 언제 오신다는 말은 조금도 없습니다.

만일 님이 쓰신 편지이면 나의 일은 묻지 않더래도,

언제 오신다는 말을 먼저 썼을 터인데,

 

당신의 편지가 왔다기에, 약을 달이다 말고 떼어보았습니다.

그 편지는 당신의 주소는 다른 나라의 군함입니다.

만일 님이 쓰신 편지이면 남의 군함에 있는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편지에는 군함에서 떠났다고 하였을 터인데.

 

 

 

나는 잊고저

 

 

남들은 님을 생각한다지만

나는 님을 잊고저 하여요

잊고저 할수록 생각히기로

행여 잊힐까 하고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잊으려면 생각히고

생각하면 잊히지 아니하니

잊도 말고 생각도 말아볼까요

잊든지 생각든지 내버려두어볼까요

그러나 그리도 아니 되고

끊임없는 생각생각에 님뿐인데 어찌하여요.

 

구태여 잊으려면

잊을 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잠과 죽음뿐이기로

님 두고는 못하여요

 

아아 잊히지 않는 생각보다

잊고저 하는 그것이 더욱 괴롭습니다.

 

                                한용운 시집 <님의 침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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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의 거사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33인 앞에서 만세삼창을 선도하던 그는 3.1운동을 함께 한 동지들이 극형에 처해지리라는 풍문에 전전긍긍하던 모습을 보고 오물통을 던져 일갈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불과 서른살에 <조선불교유신론>을 집필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시어로 사랑과 인연과 그리움과 기다림을 노래한 시인이었다.

 

시인은 도대체 무엇을 그토록 절절하게 기다린 것일까. 단지 조국 광복의 '그날' 뿐이었을까.

단지 조국 광복에 관한 것뿐이라면 어쩌면 저리도 연인간의 애달픈 별리를 잘도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을 절절하게 사랑해 보지 않은 이가 조국이나 광복같은 단어를 인격처럼 그렇게 사랑할 수 있을까. 보듬고 껴안을 수 있을까. 

시의 행간에서 적어도 만해는 강골의 혁명가나 투사가 아니었다. 형형한 눈길의 대선사도 아니었다.

지아비를 기다리는 순종의 아내요,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지고지순한 여인일 뿐이었다.

 

  - 김병종의 '화첩기행' 중에서-

 

 

 혁명가요, 민족적 지도자였던 안창호 선생은 세밀한 분으로 꽃나무 하나 사시는 데도 검토를 하셨다.

큰 일을 하는 분은 대범하다는 말은 둔한 머리의 소유자가 뱃심으로 해 나간다는 말이다. 지도자일수록 과학적 정확성과 예술적 정서를 가져야 한다. 

 

  - 피천득 수필집 <인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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