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근 선생님댁 방문기
(글 : 김경옥 간사)
2004년 9월 11일 토요일 오후 1시, 서울 신대방동에 있는 ‘서울가든’ 음식점에는 아동문학가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원로 아동문학가 박홍근 선생님을 만나 뵙기 위해서였다. 원래는 몇 사람이 선생님 댁에 가서 차로 모셔오기로 되어 있었으나, 선생님은 문삼석 전회장님과 오순택 선생님의 부축을 받으며 식당까지 걸어오신 것이다. 두 분 선생님은 한 시간 전에 미리 방문하여 선생님과 담소를 나누다가 모처럼 걷고 싶다는 선생님의 뜻에 따라 식당까지 모시고 오게 되었다고 한다.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걸어오시는 선생님의 표정은 매우 밝았으나 걸음은 다소 힘겨워 보이셨다.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느라 식당 안은 시끌벅적했다. 조대현 회장님을 비롯해 그날 참석한 인원은 20명이나 되었다.
식당 안의 풍경은 잔칫집처럼 유쾌하고 들뜬 분위기였다. 선생님을 둘러싸고 앉은 우리들의 모습은 마치 아들, 며느리, 딸, 손녀 인 것 같았다.
선생님의 건강을 묻자 ‘아픈 데 없다’고 말씀하셔서 우리는 마음을 놓았지만 거의 드시지 못하는 모습을 뵈니 한편 걱정스럽기도 했다. 워낙 소식을 하는 분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날도 음식에 잠깐 입만 대셨을 뿐 드신 양은 지극히 적었다.
식사를 하면서 그간의 협회 일에 대해 조대현 회장님이 이야기를 하셨다. 처음 박홍근 선생님께서 시작했던 마해송 문학비 사업이 이제 결실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것, 이번 세미나는 파주출판단지에서 마해송 문학비 제막식과 함께 치러진다는 것…. 그리고 오늘 선생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이런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우리 모두는 맥주잔을 들어올렸다. 잔을 들고 건배를 하다보니 선생님의 맥주 사랑 이야기가 안 나올 수 없었다. 충무로에 사실 때 자주 가셨다는 맥주집 ‘호롱불’ 이야기, 맥주 한 잔을 하고 나면 꼭 커피 한 잔도 해야 했고 그래서 늘 1차, 2차, 3차를 가셨다는 이야기. 선생님은 후배들의 이야기에 시종일관 웃음으로 귀 기울이셨는데 잘 듣지 못하다 보니 옆에 계신 손연자 선생님과 이가을 선생님께서 귀에 대고 통역관처럼 전해 드렸다.
정겨운 대화를 나누는 것도 잠깐, 갑자기 선생님께서 몹시 힘들어하셨다. 그러더니 급기야 “힘들어서 기대야겠다.”하시며 기댈 수 있는 모퉁이쪽으로 자리를 옮기셨다. 선생님은 얼굴이 붉어진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셨는데 알고 보니 기분 좋게 맥주 한 모금 마신 것이 화근이었다. 그간 건강이 많이 안 좋아졌고 한동안 중환자실에도 계셨던 선생님께 맥주 한 모금조차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나 보다. 우리들은 걱정이 되어 바닥에 방석을 깔고 선생님을 눕게 했다. 잠시 누워계시던 선생님이 조금 나아진 듯 보였다. 우리들은 얼른 댁으로 모시고 가 편하게 쉴 수 있게 해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선생님 댁으로 가니 사모님은 안계셨다. 재빨리 침대로 모시자 선생님은 가만히 모로 누우셨다. 우리들은 선생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왔는데 오히려 선생님을 힘들게 한 건 아니었나 죄송스런 마음이 되어 조심조심 서재 구경을 하고 있었다. 얼마 후 휴식을 취하고 난 선생님께서 한결 나아진 표정이 되어 거실로 나오셨다.
“아까는 힘들어서 혼났어.”
그제야 선생님은 편안한 얼굴로 소파에 앉으셨다. 한동안 바깥 출입도 일절 안하신 데다 집에서도 침대와 소파, 그리고 식탁으로만 왔다갔다 하는 것이 전부였던 선생님이 비록 바로 옆이라 하더라도 식당까지 걸어오시고 또 딱딱한 방바닥에 앉아있는 것이 몹시도 힘드셨던 것 같다.
“미안해. 오늘 처음 본 사람도 있는데….”
선생님은 말끝마다 “미안해. 감사해.”를 붙이셨다. 분위기는 다시 살아나고 우리는 파티 준비를 했다. 차를 끓이고 케�을 준비하면서 ‘사모님께 조금이라도 폐가 되지 않도록 흔적도 없이 원래대로 해놓고 가야한다’고 다들 말씀하셨다. 케�에 불을 붙이고 우리는 선생님이 노랫말을 쓰신 <나뭇잎배>를 합창했다. 유효진 선생님이 미리 악보를 준비해 와주신 덕분에 우리는 노래에 흠뻑 빠질 수가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노래를 들으시던 선생님께서, “틀렸어. 음이 너무 낮아.” 하신다. 음악을 전공하신 분다운 예리한 지적이었다. 제대로 부른 사람은 송재찬 선생님 한 분 뿐이란다. 그 덕분에 송재찬 선생님은 독창을 해야 하는 영광을 누렸고 ‘아동문학계의 조수미’ 손연자 선생님이 소프라노로 노래를 부르셨다. 게다가 유효진 선생님의 일곱 살짜리 딸, 신형은 어린이가 할아버지 앞에서 노래자랑 하는 손녀처럼 앙증맞게 노래를 불러 흐뭇했다.
노래를 부르고 나서 선생님은 왜 아동문학을 하게 되었나를 말씀해 주셨는데 여전히 또렷한 기억력만은 놀라웠다. 우리들이 함께 부른 노래 <나뭇잎배>는 선생님이 처음 쓰신 작품이라고 한다. 선생님이 쓰신 작품 중에 20여 편만 시고 나머지 모두가 아동문학 작품이라고 하니 아이들을 위해 평생 사신 분임에 틀림없다.
선생님이 이야기 들려주시는 동안에도 바깥은 여전히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우리들은 선생님과 함께 사진을 찍은 뒤 서서히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사모님이 오셨다. 선생님은 한 사람 한 사람 손을 잡으며 “나는 늘 집에 있으니 언제든지 놀러 와.” 하신다. 하루 특별히 날을 잡아 스무 명이 한꺼번에 몰려가기 보다는 삼삼오오 조용조용 찾아뵈면서 외롭지 않게 해드리는 아름다운 만남이 계속 이어지길 바래본다.
(참석자 - 문삼석, 조대현, 이가을, 손연자, 오순택, 정영애, 한명순, 백승자, 이규희, 강원희, 정두리, 박상재, 송재찬, 이경애, 길지연, 유효진, 신형은 어린이, 장수민, 이시구, 김경옥,)
< 한국아동문학인협회보 2004.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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