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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상 선생님의 문학과 교육 50년 <한국아동문학인협회보>

아동문학가

by 순한 잎 2008. 7. 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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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인터뷰 / 김종상의 문학과 교육 50년  

 

                   한 알의 작은 씨앗을 큰 나무로                   


 들로 가신 엄마 생각,

  책을 펼치면

  책장은 그대로

  푸른 보리밭.        -'어머니' 부분

              

  김종상 선생님을 떠올리면 항상 선생님의 시 ‘어머니’ 가 저절로 읊어진다. 평소 좋아하는 시이기도 하지만 소탈한 시골 선비 같은 선생님 모습과 푸른 보리밭이 어쩐지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선생님이 읊은 푸른 보리밭이 누렇게 익어가는 6월, 그 보리숲을 스쳐오는 바람처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나는 공덕역으로 향했다.

  역에 다다르자 선생님은 훤칠한 키에 미소를 띤 채 맞아주셨다. 언제나 사람을 반갑고 편하게 대해주시는 선생님! 그래서 나처럼 까마득한 후배도 선생님과 마주하면 어떤 이야기라도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선생님의 이런 부드러운 포용적 카리스마가 갈라져있던 우리 아동문학단체들을 하나로 통합시킬 수 있었던 힘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올해는 선생님에게 매우 의미 있는 해이다. 아동문학과 함께 하신 세월이 꼭 5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작년 4월에는 오랫동안 몸담았던 교직에서 퇴임하셨다. 교단 52년, 문단 50년! 한국아동문학의 역사 100년 중에 선생님은 그 절반을 지켜 오신 것이다. 얼마 전 도서출판 순리에서 그간의 선생님 자취를 정리한 책이 나왔다. 《김종상 아동문학 50주년》이란 이 책은 한국아동문학 100주년을 기념하여 문단의 지인들과 제자들이 참여하여 한정판 50부로 제작한 책이다. 나중에 선생님이 보관용으로 조금 더 찍기는 했지만 아주 희귀본으로 출판되었다. 이를 계기로 평생을 문단과 교단을 함께하신 선생님께 ‘아동문학과 교육’에 관한 생각을 들려달라고 부탁드렸다.

선생님께서는 서슴없이 인연설(因緣說)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인연(因緣)이란 말에서 인(因)은 씨앗이고 연(緣)은 환경입니다. 한 알의 씨앗이 싹터 자람에는 환경이 절대적인 영향입니다.

 ‘강남의 귤도 강북에 오면 탱자가 된다.’ 는 옛말이 있지요. 같은 씨앗이라도 환경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사막에 떨어진 씨앗은 싹틀 수 없고 오염된 땅에 심으면 썩어버리지요. 환경이 좋으면 선연(善緣)이 되어 훌륭한 결과가 오지만 환경이 나쁘면 악연(惡緣)이 되어 나쁜 결과가 옵니다. 어린이는 인류의 천연자원입니다. 겨레와 민족의 소중한 씨앗이지요. 이 씨앗에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고 훌륭히 싹틔워 값진 재목으로 가꾸려는 국가와 민족의 열망으로 마련된 것이 여러 가지 교육제도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환경 중에서 문학은 인간을 만들어주는 매우 중요한 환경이라고 했다. 세계적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은 여덟 살 때 아버지가 사준 ‘그림역사책’에서 감동을 받아 신화로만 존재하던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로 밝혀냈고, 파브르는 뒤프르의 ‘벌이야기’의 영향을 받아 위대한 곤충학자가 된 것들이 모두 문학이 위대한 사람을 만든 사례라고 했다.

 선생님은 처음부터 교육을 위해 아동문학을 해왔다고 했다. 상주 외남초등학교 시절은 휴전 직후라 참 어려웠단다. 아이들에게 읽힐 책이 없어 선생님은 직접 동시와 동화를 써서 들려주고 읽혀주었단다. 그렇게 쓴 작품은 1958년《새교실》에 소년소설「부처손」이 뽑히고, 이듬해《새벗》에 동시「산골」이 입상했으며, 1960년에는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동시「산 위에서 보면」이 당선되어 교단과 문단의 두 길로 접어들었단다.


  산 위에서 보면

  학교가 나뭇가지에 달렸어요.

 

  새장처럼 얽어놓은 창문에,

  참새 같은 아이들이

  쏙쏙

  얼굴을 내밀지요

 

  장난감 같은 교문으로

  재조잘재조잘

  떠밀며 날아나오지요.          

                              - '산 위에서 보면' 전문


 “아동문학 작품은 아름다운 사랑의 세계를 고운 언어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한 문학작품은 읽는 어린이들에게 꿈과 사랑을 심어주고 바른 품행과 훌륭한 인격을 갖추어 준다는 것을 저는 굳게 믿고 있어요.”  

 선생님은 교단에서 크게 존경받는 스승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나이가 60세 중반인 어느 옛 제자는《김종상 아동문학 50주년》에 기고한 글에서 선생님과 공부했던 때를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추억했고, 대학교수인 제자는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오늘의 자기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또 유명 연예인이 된 제자는 선생님의 가르침은 지금까지도 삶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술회했다. 이렇게 제자들은 한결같이 선생님의 열정과 문학을 통한 감화의 교육을 말했다. 그런데 학교관리자 중에는 겉치레만 하는 관리능력이나 자랑하고 문학의 교육적 효용가치를 무시하는 경우가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중국 산동성 소상소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어요. 명문 공립학교인데 외형적으로 특별한 것이 없었어요. 명문인 이유가 ‘고시장원제’로 아이들에게 고시(古詩), 즉 옛 한시를 암송시켜 장원을 뽑는 교육방침 때문이었어요. 고시장원제를 실시했더니 아이들 품성이 좋아지고 학력도 전반적으로 높아지더라는 것이었어요. 프랑스도 시교육으로 유명하잖아요?”

 선생님은 ‘문학을 통한 인성교육’의 신념이 대단하셨다. 이러한 신념은 ‘어린이 시사랑회’를 만들어 언론 출판계의 도움을 받아 어린이시읽기운동을 전국적으로 벌이기도 하셨고, 시교육에 관한 책도 수십 권 쓰셨다.

 선생님은 왜 문학을 했느냐고 물으면 항상 교육을 위해 하셨다고 하신단다. 하지만 문학의 효용성을 내세우다보면 자칫 예술성이 훼손되는 결과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교육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고민은 없으셨는지 여쭈었다.

 “아동문학의 교육성과 예술성은 같은 축에 달린 두 바퀴입니다. 이 두 바퀴가 조화를 이루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문학이 ‘인간교육을 위한 최선의 환경’이길 소망하시는 것 같았다.

 “인연에는 과보가 따르지요. 인(因=씨앗)이 좋은 연(緣=환경)에서 자라면 맛난 과(果=과실)를 맺어 큰 보(報=보답)가 돌아오지요. 이것을 인연과보(因緣果報)라 해요. 아이(因)를 키우는 좋은 환경(緣)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문학작품만큼 시공(時空)을 초월한 환경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동문학은 최우량의 사람을 만드는 인간학 교재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나의 생각이 아닙니다. 신라 때는 독서삼품과로 관리를 뽑았고, 고려와 조선시대는 과거로 인재를 등용했어요. 문학교육의 정도를 봐서 백성을 다스리고 국가를 경영할 사람을 선택한 것입니다.”

 아동문학과 교육에 대한 선생님의 철학은 확고하며 논리가 정연하였다. 그것은 반세기 넘게 문단과 교단의 체험에서 온 결과일 것이다.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여쭈었더니, 작품을 쓸 때는 ‘왜 쓰는가?, 무엇을 쓸 것인가?, 어떻게 쓸 것인가?’ 를 꼭 생각하라고 당부하셨다.

 학교에서 은퇴 하신 후 특별한 계획을 갖고 계신지 여쭈었다.

  “이 달 중에 동시집이 한 권 나옵니다. 만 4년 만에 나오는 거지요. 그리고  꽃 설화를 5권 냈는데, 그 후 틈틈이 조사해 놓은 원고가 약 두 권 분량 더 있어요. 지금도 여기저기로 조사하러 다닙니다.”

  선생님은 꽃설화를 채록하여 정리하는데도 남다른 열정을 쏟아오셨다.

 ‘나문재’라는 풀 하나를 조사하기 위해서 강화도를 수차례나 다녀오셨다고 했다. 선생님은 꽃설화 뿐만 아니라 다른 설화에도 해박하셨다. 이러한 해박한 지식은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얻은 결과이다. 고령의 노인들을 찾아 이야기를 듣고 생태를 연구하여 작품으로 완성하는 선생님의 열정과 노력이 우리 아동문학을 살찌우고 교육의 질을 높여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로지 어린이를 위한 한 알의 작은 씨앗으로 시작하신 50년 아동문학과의 인연. 그리고 반세기 넘게 몸담아 오신 교육현장, 그 두 길에서 선생님은 큰 거목이 되신 분이시다. 선생님께서는 교육을 위해 문학을 해오셨다지만 그 결과는 우리 문단에 참으로 풍요로운 과일(果)로 익어가고 있다. 그 과일들은 지금 이 땅 곳곳에서 값진 보답(報)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고 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내가 쓰는 작품은 과연 독자들에게 얼마만큼의 선연(善緣)으로 다가갈 수 있을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한국아동문학인협회보 제 57호 /취재 김경옥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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