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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는 게 원래 말장난 (김승희 시인)

좋은시& 시집

by 순한 잎 2017. 8. 1.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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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라는 게 원래 말장난이지 않은가"


시집 '도미는 도마 위에서' 낸 '그래도(島)'의 시인 김승희
언어 유희 통한 삶의 풍경 노래

김승희 시인(65)이 올해로 등단 44주년을 맞아 10번째 시집 '도미는 도마 위에서'(난다)를 냈다. 김 시인은 "도마에 오른 생선처럼 더 이상 갈 데 없는 실존의 위기 속에서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스쳐 지나간 삶의 풍경들이 이 시집에 들어 있다"라고 말했다. 김 시인은 인터넷에서 널리 회자된 시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로 이름이 높다. '그래도라는 섬에서/ 그래도 부둥켜안고/ 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이라며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그래도'라고 희망을 노래한 시가 대중적으로 큰 호응을 받은 것. 김 시인은 "시라는 게 원래 말장난이지 않은가"라고 했다.

“꽃이 필 때마다 우주가 한 식구 같다는 느낌을 갖는다”며 배롱나무꽃 아래에 선 김승희 시인.
“꽃이 필 때마다 우주가 한 식구 같다는 느낌을 갖는다”며 배롱나무꽃 아래에 선 김승희 시인. /천윤철 인턴기자
이번 시집에서도 김 시인의 언어유희는 계속된다. 시 '좌파/우파/허파'가 대표적이다. 생명을 상징하는 '허파'는 특정 '파'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화처럼 들려준다. '시곗바늘은 12시부터 6시까지는 우파로 돌다가/ 6시부터 12시까지는 좌파로 돈다/ 미친 사람 빼고/ 시계가 좌파라고, 우파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중략)/ 시곗바늘도 세수도 구두도 스트레칭도/ 좌우로 왔다갔다하면서 세상은 돈다/(중략)/에덴의 동쪽도 에덴의 서쪽도/ 다 숨은 샘이 흐르는 인간의 땅/ 허파도 그곳에서 살아 숨쉰다'.

시 '무지개의 기지개'도 재치 있는 단어 변형이다. '무지개는 비를 기억하지 않지만/ 비는 얼마나 무지개를 열애했던 것일까?'라며 무지개 피는 순간을 다뤘다. 비가 그치고 날이 갠 과정을 기지개 켜는 무지개로 의인화했다. 현재는 과거의 꿈이 쌓인 것이기에 '내일이 온다면 다름이 아니라/ 네 마음의 밀애가 당겨서 오는 거라더라'며 무지개는 열망의 기지개라고 노래했다.

시 '기도하는 사람'도 패러디에 의한 말놀이다. '기도를 많이 하다가/ 기도 안에 갇힌 사람/ 기도 안에 갇혀/ 기도를 미워하게 된 사람/ 기도를 버린 사람/ 기도를 버리고 나니/ 아픈 만큼 기도가 보이게 된 사람'이라는 시행에서 '기도'는 베케트의 부조리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중 한 대사와 연결된다. "고도씨는 오늘밤에 못 오지만 내일 올 예정"이라는 것. '고도'가 상징하는 절대의 존재를 기다리는 기도를 올리면서 마침내 집착을 포기할 때 '비로소 기도가 시작되는 사람'이 된다는 얘기다.

김 시인은 "원래는 '꽃들의 제사'를 시집 제목으로 삼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어떤 그리움이 저 달리아 같은 붉은 꽃물결을 피게 하는가'라고 노래한 시인은 "꽃이 핀다는 것은 똑같은 것의 순환이란 점에서 죽음을 넘어선 원형(圓形)의 무한함도 꿈꾸게 한다"는 것. 시인은 8월 말 서강대 국문과 교수직에서 정년 퇴임한다. 그는 "계속 글을 쓰면서 살겠지, 뭐"라며 "글도 순환하니까"라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31/201707310276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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