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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적戀敵 / 소야 신천희

좋은시& 시집

by 순한 잎 2017. 2. 13.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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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적戀敵 


                                              소야 신천희

    

그땐 몰랐다 정말 몰랐었다

게걸스레 나이를 먹다가

때늦게 고아가 된 후에야 비로소 알았다

아버지와 내가 한 여인을 사이에 두고

서로 흠모한 연적戀敵이었다는 것을

아버지는 그 여인의 그림자까지 사랑했지만

그녀는 스파이같이 남모르게 나를 더 좋아했다

우직하게 남을 잘 믿는 아버지가

건네지 못한 주머니 속 연서처럼 심드렁하게

마음만 간직한 채 그녀를 믿고 있을 때

사탕을 핥는 혀처럼 살가운 나에게

잔고를 다 털려 쇠잔해진 그녀는 끝내

무기력하게 생의 토너먼트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이젠 그녀의 애칭을 아슴아슴 부르기만 해도

길을 잃어버린 어린아이처럼

천지사방 분간을 못하는 얼치기가 되어

천수답 마른 눈에 물길을 열어 물을 댄다

내 아버지의 단 하나뿐인 연인이었지만

아버지보다, 나보다 더 나를 좋아했던 여인

두 글자 세 글자로 부를 때보다

메마른 입술에 닿은 혀끝이 에이듯 아리게

네 글자로 부를 때 더 애틋한 그녀

어 머 니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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