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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어머니학교15-19 (이정록)

좋은시& 시집

by 순한 잎 2011. 8. 2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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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사상> 2011 8월호

어머니학교 15

                


요샌 글이 통 안 되냐?

먼저 달에는 전기 끊는다더니

요번 달에는 전화 자른다더라.

원고료 통장으루 자동이체 혔다더니

며느리한테 들켰냐?

글 써달란 디가 아예 웂냐?

글삯 제대루 쳐줄 테니께

어미한테 다달이 편질 부치든지. 

글세를 통당 주랴?

글자 수루 셈해 주랴?




                                  <문학사상> 2011 8월호

어머니학교 16



티브이 잘 나오라구

지붕에 삐딱허니 세워 논 접시 있잖냐? 

그것 좀 눕혀 놓으면 안 되냐?

빗물이라두 담구 있으면

새들 목두 축이구 좀 좋으냐?

그리구 누나가 놔준 에어컨 말이다.

여름 내내 잘금잘금 새던디

어디다가 물을 보태줘야 하는지 모르것다.

뭐가 그리두 슬퍼 울어쌌는다냐?

넘의 집 것두 그런다냐?  





                                  <문학사상> 2011 8월호

어머니학교 17



자고로 사내란

사타구니에 두더지 한 마리씩 키우지.

어떤 사내덜은 읍내장터루 쇠전으루 방목두 다니고 방생두 헌다지만

아버지 두더지는 텃밭을 벗어난 적 웂어야

두더지보다두 아버지가 평생 공들인 건

오른팔 적삼 속에다 키운 가물치 한 마리여. 

난생처음 예당저수지루 낚시질 갔다가

눈먼 가물치를 비료푸대에 담아왔는디

이 사람 저 사람 짬날 때마다 어찌나 호들갑 떨던지.

그 가물치가 해마다 두어 뼘씩은 자라서 낭중에는

팔뚝만으룬 설명할 길이 없는 거라, 허벅지까지 걷어 부치구는

딱 한 번 잡아먹은 비린 것 자랑이 이만저만 아녔는디

당신이 그 가물치를 잡지 않았으면 배가 뒤집힐텐디

덕산고 조정선수들이 어찌 노를 저을 것이냐?

막걸리 사발이나 비워댔지. 남자는 풍이 좀 걸쭉혀야 사내답지.

그 왕가물치가 꼬리지느러미루 저수지 바닥을 때리면

집채만 파도가 일어 예당평야에 물난리가 났을 것이라구

호언장담 늘어놓더니, 간경화에 설암까지 겹쳐 허벅지를 꺼냈을 땐

가물치두 그 옛날 비료푸대루 되돌아간 듯 시름시름 비척대더구나.

가물치가 사타구니 쪽으루 자꾸 주둥일 치대니께

아버지 두더지는 어느 구녕으루 가물가물 겨들어갔는지

막내 낳기두 전에 소금 맞은 거머리처럼 가뭇없어졌는디

엊그제 선산에 올랐드니만 글쎄 아버지 무덤 가운데다

기똥차게 가르말 터놨더구나. 그나저나

가물치가 여자헌테 아무리 좋다헌들

두더지 내뺀 뒤에 뭔 소용이것어.




                                  <문학사상> 2011 8월호

어머니학교 18

                               


노각이나 늙은 호박을 쪼개다 보면

속이 텅 비어 있지 않데? 지 몸 부풀려

씨앗한테 가르치느라구 그런 겨.

커다란 봄 하늘과 맞닥뜨린 새싹이 

기죽을까 봐, 큰 숨 들이마신 겨.

내가 이십 리 길 읍내 장에

어떻게든 어린 널 끌구 댕긴 걸 야속케 생각 마라.

다 넓은 세상 보여주려구 그랬던 겨.

장성한 새끼들한테 뭘 또 가르치것다구

이렇게 둥그렇게 허리가 굽는지 모르것다.

뭐든 늙구 물러 속이 터엉 빈 것을 보면

큰 하늘을 모셨구나! 하구는

무작정 섬겨야 쓴다.





                                   <문학사상> 2011 8월호

어머니학교 19

                    


용광로가 될 거다


참나무장작이 될 거다


호들갑 떨지 말구


넌 그저 부지깽이가 되어라.


네 종아리 후려치던


작은 부지깽이가 되어라.


까막눈 어미한테 글을 깨우쳐주던


부지깽이 몽당심이 되어라.


부엌바닥 흙공책에


식구들 이름을 받아 적던 


검은 눈동자가 되어라. 


간혹 불꽃 눈 치켜뜨는


반딧불이가 되어라.





출처 : 격월간 동시 전문지, <<동시마중>>
글쓴이 : 모지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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