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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고영민, 유홍준)

좋은시& 시집

by 순한 잎 2009. 7. 13.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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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민 님의 시 두 편.

 

   만삭

 

   새벽녘 만삭의 아내가 잠꼬대를 하면서 운다. 흔들어

깨워보니 있지도 않은 내 작은마누라와 꿈속에서 한바탕

싸움질을 했다. 어깨숨을 쉬면서 울멍울멍 이야기하다

자신도 우스운 듯 삐죽 웃음을 문다. 새벽 댓바람부터 나

는 눈치 아닌 눈치를 본다. 작은마누라가 예쁘더냐, 조심

스레 물으니 물닭처럼 끄덕인다. 큼직한 뱃속 한가득 불

안을 채우고 아내는 다시 잠이 들고, 문득 그 꿈속을 다

녀간 작은마누라가 궁금하고 보고 싶다. 잠든 아내여, 그

그리고 근처를 서성이는 또다른 아내여. 이 늦봄의 새벽녘,

나는 지척의 마음 한자락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언제

쯤 아내가 숨겨놓은 작은마누라를 내 속으로 몰래 옮겨

올 수 있을까. 번하게 밝아오는 창밖을 바라보면서 아내

의 꿈속을 오지게도 다녀간 사납지만 얼굴 반반한 내 작

은마누라를 슬그머니, 기다려본다.

 

 

   거울

 

   지난주말 시골집에 갔는데 우리집에 참, 이상한 새 한

마리가 산다. 배 쪽은 짙은 밤색, 등 쪽은 검은색, 깃에는

흰색 점이 박힌 참새만한 새인데 이 새는 하루종일 마루

에 걸어놓은 거울에 와서 논다. 파르륵, 날갯짓을 하며

거울을 오르락내리락하는데 어머니 말씀대로, 살면서 세

상에 별놈의 새를 다 본다. 거울 속 제 모습을 두고 짝이

라고 생각하는 듯싶다. 저녁 무렵, 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하신다. 여름에 안방으로 새 한 마리 들어왔기에 들고 있

던 파리채로 그만 후려갈겼다. 그게 짝인갑다. 아버지도

참...... 그래서 내가 팔순의 아버지께 왜, 그 새를 죽였냐

고 난생처럼 버릇없이 화를 내었다. 그리고 내 얼굴이 비

치는 그 마루의 거울 속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고영민의 시집 <공손한 손>(창비) 중에서-

 

고영민- 시집으로 <악어>, <공손한 손>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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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님의 시 두 편.

 

 할미꽃

 

안감이 꼭 저런 옷이 있었다

안감이 꼭 저렇게 붉은 옷만을 즐겨 입던 사람이 있었다

일흔일곱 살 죽산댁이었다 우리 할머니였다 돌아가신지 꼭 십년됐다

할머니 무덤가에 앉아 바라보는

앞산마루 바라보며

생각해보는......

 

봄날의 안감은 또 얼마나 따뜻한 것이냐

 

봄날의,

 

이 무덤의 안감은 또 얼마나 깊고 어두운 것이냐.

 

 

입술의 죽음

 

  몸져누운 사람의 입술이 편지봉투 같다 침이 말라 자꾸 윗

입술과 아랫입술이 달라붙는다 저 입술 저 침 접착제 같다

할 말 마저 다 못하고 밥알로 으깨 붙인 편지봉투 저 입술 표

도 안 나게 뜯어 읽고 붙여 놓으려고 해도 안 된다 자꾸 탄로

가 난다 탄로가 나 이 겨울 내 입술이 거의 그렇다 무슨 말인

가를 하긴 해야겠는데 자꾸 달라붙어 말이 안 된다 혀끝 내

밀어 침을 바르면 그 입술 이내 메말라 꺼풀이 일어나 입술

에 침을 발라서라도 끝끝내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했던 사람

이 떠오른다 오로지 눈빛으로만 읽던 그 말이 떠오른다 다행

이다 어쨌든 눈빛보다 먼저 죽은 인간의 입술.

 

유홍준 - 시집으로 <상가에 모인 구두들>, < 나는, 웃는다> 있음.

 

 

* 시를 읽는다. 읽다보면 내 상상력을 자극해 준다.

  지금 밖에서는 비가 오고......

  오늘 빗소리가,... 나는 왜 공룡의 울음소리로 들릴까??? 

  지금 방금, 창 밖에서 공룡 울음소리를 나는 분명 들었다.

                                                        -7. 13일에-

 

참, 이상하다. 비가 오지도 않는데, 나는 왜 좀전에 빗소리를 들었을까?

그럼 공룡 울음소리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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