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셸리 리드 소설 <흐르는 강물처럼>

즐거운 책읽기

by 순한 잎 2024. 10. 11.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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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문학적 향취에 흠뻑 빠져들며 읽은 소설이 있다.
<흐르는 강물처럼> Go as a river /다산책방 
광화문에 나갔다가 교보에서 책 몇 권을 사들고 왔는데
소설 코너에서 고른 책이다. 
책 띠지에는 '이동진이 선정한 24년 유일한 소설' 이라는 한 줄 글이 붙어있어
믿음이 가는 데다, 젊은시절의 잘생긴 브래드피트가 주연으로 나왔던
그 유명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과 제목이 같다는 호기심도 생겼다.
 
그러나 그 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다. 그 영화도 소설이 원작이라고 알고있지만
이 작품은 셀리 리드라는 여성작가가(대학교수) 콜로라도주 아이올라를 배경으로 쓴 작품인데
1948년부터 1971년까지 한 여성의 성장기와도 같은 소설이다.
책의 맨 앞장에는 작가, 잡지, 매체 등의 온갖 찬사를 붙여놓았는데, 외국에서 들어온 책들 중에
이런 찬사가 붙은 책에 여러번 속은 적이 있긴 했지만, 이 책은 왠지 나를 배반할 것 같지 않았다.
왜냐하면 요즘처럼 자극적인 시대에 이처럼 고전적인 제목을 달고 나왔기에 왠지 더
비범한 느낌을 받았다. 강물처럼 유장하게 흘러가는 꿋꿋한 서사가 있을 것만 같았다.
역시 내 느낌은 맞았다.
 
작가의 문체가 너무 섬세하고 유려하며, 서사 역시 실제 작가와 주인공이 동일인물로 착각할 정도로
이야기가 생생하며 재미있게 잘 짜여있다.
무엇보다 주변 경관과 자연을 바라보는 작가의 섬세한 시선과 묘사가 아름답다.
어쩜 이렇게 자연에 대한 묘사를 아름답게 경건하게, 그리고 경이롭게 할 수 있을까.
나도 글을 쓰는 작가지만 이런 섬세한 묘사나 시선은 정말 쉽지 않고 내가 제일 어렵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오랜만에 세계문학 작품을 읽은 느낌이랄까.   
 
실제 콜로라도주 아이올라가 댐에 잠기게 된 역사적 사건이 공간, 시대적 배경인데
한번도 외지를 나가본 적 없는 빅토리아라는 소녀가, 동네에 찾아든 낯선 이방인 윌슨 문과
뜨거운 첫사랑에 빠지면서 , 인생의 거센 격랑을 맞게 되고 온갖 아픔과 상처, 외로움 고통을
혼자 짊어지고 살면서도 결국은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소설이다.
 
복숭아를 길러 내다 파는 업을 하는 작은 농촌 가정에서,
돌아가신 엄마대신 일찍부터 집안 일을 도맡아 요리를 하고 빨래를 하고 복숭아를 따다 내다파는
일꾼으로서 조용히 아버지와 남동생, 이모부 등 가족을 돌보는 빅토리아는 거의 존재감없이
한 가정의 일꾼으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그런 빅토리아가 탄광에서 도망쳐 나와 여인숙을 찾으러 마을로 들어온 17세 청년 윌로 인해
비로소 가슴 뛰는 비밀 첫사랑을 하게 되고,  그 사랑의 대가로 인한 아픔과 상처를 평생 안고가게 된다.
 
인디언 원주민에 대한 인종 차별이 존재했던 당시 '인전' 으로 불리던 윌은 마을 사람들에게
배척되어 숨어 지내야만 했고 그런 윌을 찾아가 사랑을 나누는 빅토리아는 처음으로 가슴뛰는
경험을 한다. 그러나 윌은 잔혹하게 살해당하고, 빅토리아는 그의 처참한 죽음을 누구에게 말도 못한 채
혼자 고통을 삭이며, 또 윌과의 사이에서 생겨난 아이를 낳기 위해 몰래 빅 블루 야생지의
산속 움막에서 지내면서 혼자 출산을 한다.
결국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보내고, 자포자기 속에 다시 고향 마을 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댐으로 인해 물에 잠길 위기에서,  빅토리아는 제일 먼저 과감하게
마을을 떠나기로 결단하고 그동안 키웠던 복숭아 나무를 파오니아에 이식하여 자신의 새삶을 묵묵히 일궈나간다.
 
그러나 여기서만 끝나는 게 아니다. 아들을 버린 죄책감으로 인해 소설 속 특별한 공간 (아들과 헤어지게 된)
에 돌맹이를 올려놓으며 소망을 빌곤 했던 빅토리아는, 그 공간에서 의미있는 메시지를 주고받게 되며
아들을 데려다 키워준 여인과 극적으로 다시 재회하고 결국 빛나는 청년이 된 아들 루카스를(윌을 똑 닮은) 
만나는 등 소설적 재미와 긴장감을 끝까지 이어가게 만든다.
 
'흐르는 강물처럼' 이라는 말은 자연주의자와도 같은 인물인 인디언 주민 윌슨 문이 빅토리아에게 했던 말이다.
삶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며 조용히 묵묵하게 살아내는 한 여성의 강인한 모습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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