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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겨울 나는 북볔에서 살았다> / 장옥관

좋은시& 시집

by 순한 잎 2013. 12. 17.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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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월 11일 단국문학상 시상식이 있었다.

이번에 장옥관 시인께서 제23회 단국문학상을 수상하셨다.

수상 시집은 <그 겨울 나는 북볔에서 살았다> (문학동네, 2013)

수상 소감을 들어보니, 참 겸손하시다.

'어떤 상이든 과거보다는 미래에 더 방점을 두는 게 일반적인 경우인데

자신의 문학은 그런 면에서 의심이 없지 않다.'라는 말씀과

평소 지론이 ' 등단 여부와는 상관없이 오늘 아침에 시를 쓴 사람이

시인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는 말씀이셨다.

시도 무척 좋은 데다 얼굴은 온유하시고, 마음도 넉넉한 분처럼 여겨졌다.

 

 

네 편의 수상작 중 2편을 올려 본다.

 

                      붉은 꽃

                                                  장옥관

 

거짓말 할 때 코를 문지르는 사람이 있다 난생처음 키스를 하고 난 뒤

딸꾹질하는 여학생도 있다

 

비언어적 누설이다

 

겹겹 밀봉해도 새어나오는 김치냄새처럼 도무지 잠글 수 없는 것, 몸이

흘리는 말이다

 

누이가 쑤셔 박은 농짝 뒤 어둠, 이사할 때 끌려 나온 무명천에 핀 검붉은 꽃

 

몽정한 아들 팬티를 쪼그리고 앉아 손빨래하는 어머니의 차가운 손등

 

개꼬리는 맹렬히 흔들리고 있다

 

핏물 노을 밭에서 흔들리는

수크령,

대지가 흘리는 비언어적 누설이다

 

 

 

 

흰 비닐봉지 하나

담벼락에 달아붙어 춤추고 있다

죽었는가 하면 살아나고

떠올랐는가 싶으면 가라앉는다

사람에게서 떨어져 나온 그림자가 따로

춤추는 것 같다

제 그림자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그것이

지금 춤추고 있다 죽도록 얻어맞고

엎어져 있다가 히히 고개 드는 바보

허공에 힘껏 내지르는 발길질 같다

저 혼자서는 저를 드러낼 수 없는

공기가 춤을 추는 것이다

소리가 있어야 드러내는 한숨처럼

돌이 있어야 물살 만드는 시냇물처럼

몸 없는 것들이 서로 기대어

춤추는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나를 할퀴는

사랑이여 불안이여

오, 내 머릿속

헛것의 춤

 

                  -  장옥관 시집 < 그 겨울 나는 북볔에서 살았다> (문학동네, 2013)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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