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묶어버린 숫자에 저항하며 | ||||||||||
김경옥의 <그 별의 비밀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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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온통 둘러싸고 있는 숫자를 모두 없애버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시내버스 번호, 전화번호, 돈, 시간, 실적, 확률, 수학과 과학, 신기록, 책 쪽수 등. 없어지는 것을 더 생각해 내자. 뭐가 있을까…. 30초 동안 몇 개나 생각해 내는지 세어 볼까요? 누가 몇 등을 했는지 순위를 적어봅시다. 어! 그런데 숫자가 모두 사라졌군요. 어떻게 할까요?
무슨 일을 하든,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숫자에 길들여져서 그 속에서 힘들게 헤매며 살아간다. 그리고 가끔 고개를 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골치 아픈 일 다 버리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그러나 어느 순간 사람들은 다시 그 숫자의 홍수 속으로 들어가 있다. 1시 태권도, 3시 영어, 5시 간식, 7시 수학 33쪽에서 37쪽까지, 길에서, 책상에서, 가족에게서 나오는 숫자를 피해 숫자에 넌덜머리가 난 사람들만 들어오는 별로 왔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일단 그 별로 들어오면, 잊고 싶은 것은 마음껏 잊을 수 있는 별. 감자 스낵 1봉지에 400칼로리 열량이 있고, 그걸 소모하려면 1시간 이상 걷거나, 30분 이상 달려야 한다는 엄마의 잔소리를 피해서 온 폴도 있다. 달리기가 좋아서 뛰기 시작했다가 신기록을 내기 위해 100미터를 12초보다 더 빨리 뛰어야 하는 소년, 직장을 다니는 어른도 있다.
왜 숫자에 지쳤을까? 숫자로 인해 사람들은 편리해졌고, 세상은 정확하고 빈틈없이 돌아가는데. 우주 만물을 설명하는 기본 원리가 담겨져 있는데. 그 별로 간 어른은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본래의 의미는 잊은 채, 모든 것을 숫자로 설명하고 양으로만 따지려는 나쁜 버릇이 생겼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규정에 사람들이 갇히고 마는, 그에 반항하지 못하도록 더 엄격하고 절대적인 힘을 사람들이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공소시효 15년. 언젠가 사람들이 정한 숫자이다. 개구리 소년의 가족들, 화성연쇄사건 피해자 가족들은 15년이라는 숫자에 멍울이 든 이후, 앞으로는 1년, 2년을 더 헤아려가며 영원히 아픈 상처를 가지고 살아야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 가족들에게 숫자에 넌덜머리가 난 사람들이 찾아가는 그 별로 이민 갈 것을 추천하고 싶다. 어쩌면 이미 그 별 앞에서 계속 초인종을 누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사용할 수 있는 숫자, 그 별의 비밀번호에 상처로 새겨진 숫자가 있어 차마 누르지 못하고 안에 있는 찬이가 열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 경기북부신문> 글. 양정화 (동화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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