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

즐거운 책읽기

by 순한 잎 2011. 7. 28. 14:50

본문

 

『진주 귀고리 소녀』

트레이시 슈발리에 作/강출판사

 

예술적 영감과 작가의 상상력

 

-김경옥

 

먼저 책 표지에 실린 ‘진주 귀고리 소녀’ 그림이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다.

백옥 같은 얼굴을 가진 소녀, 그 귀에는 은빛의 귀고리가 눈물 한 방울처럼 매달려있다.

맑은 눈망울은 아직 세상 때가 묻지 않은 듯 느껴지고, 조금 벌리고 있는 촉촉한 입술은 묘하게도 섹시함과 백치미를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

이 소설은 17세기 네덜란드 화가인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을 미국의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란 소설가가 작가적 상상력으로 풀어내 멋진 이야기로 만들어낸 것이다.

소설이란 허구인 줄 알면서도 그 속에 흠뻑 빠져 의심 없이 진실로 받아들이는 세계인 것이다. 이 소설이야말로 그림들에 담긴 이야기가 진실인양 우리를 흠뻑 빠져들게 만든다.

 

 

타일공인 아버지가 사고로 눈이 멀게 되자, 가정은 어려워지고 소녀는 돈을 벌어야만 했다. 그래서 화가의 집에 하녀로 들어가기로 한다.

화가는 부인과 함께 소녀의 집을 직접 방문 해 소녀와 첫대면을 하게 된다. 화가가 소녀의 집에 방문했을 때, 마침 소녀는 스프를 만들기 위해 야채를 썰어놓았는데 둥근 파이 모양으로 각각의 야채를 단정하고도 둥글게 담아놓았다. 화가는 그 야채들을 특별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소녀에게 묻는다.

“주홍색과 자주색, 이 둘은 나란히 있지 않군. 왜 그러지?”

그러자 소녀가 말한다.

“그 색깔들은 나란히 있으면 서로 싸우니까요.”

화가와 소녀의 첫만남은 이렇게 의미심장하고도 간단한 대화로 시작되고, 더 이상의 어떤 대화도 없이 끝나 버린다. 그리고 소녀는 화가의 집에 하녀로 들어가게 된다. 소녀의 주 업무는 화가의 방을 청소하는 일. 그러나 평범한 청소가 아니다. 왜냐하면 조금이라도 건드린 흔적 없이 청소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것 하나도 움직여서는 안 된다. 탁자 위에 어지럽게 뭉쳐놓은 푸른 천 마저도 주름을 그대로 둔 채 청소를 해야 한다. 소녀는 탁자 위에 놓인 물건과 물건들의 거리를 손으로 잰 뒤, 조심스럽게 닦아내고 완벽하리만치 모든 물건들을 원래대로 놓아둔다. 그리고 문득 문득 뒤에서 바라보는 그의 그윽하고도 깊은 잿빛 눈동자를 의식하게 된다. 그리고 소녀의 마음에 그가 들어온다.

 

 

이 소설은 베일에 싸인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인 베르메르의 작품에 이야기를 불어 넣었을 뿐 아니라 17세기의 델프트란 지역을 매우 자세히, 그리고 생동감 있게 표현해냈다. 또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과정과 물감을 만들어내는 과정 등 17세기 당시의 모습을 사실에 입각하여 완벽하게 재현해 내고 있다.

 

 

이 소설은 참으로 가슴 뛰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소설 어느 한 구석에도, 사랑한다는 말, 혹은 사랑의 행위도 나오지 않지만, 읽는 내내 짜릿한 전율을 느끼게 해준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 비밀스럽게 눈빛 교환을 한다거나, 어쩌다 손가락 끝이 살짝 스쳐 둘만 아는 느낌을 간직하는 것 같은, 고결한 전율을 느끼게 해준다.

 

 

화가 베르메르는 하녀인 그리트에게 예술적 영감을 얻는 것이 분명했다. 베르메르에게 하녀 그리트의 존재는 뮤즈의 대상이었고, 또 제자였으며 연인이었다. 그러나 베르메르는 미묘한 감정이 교차하는 순간에도 화가로서의 도덕적 선을 철저히 지켜낸다. 그 순간, 우린 혼란에 빠진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는 것일까. 그는 단지 자신의 그림만을 위해 그녀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인간의 감정을 떠나 그의 모습은 참다운 예술가의 경지로 받아들여진다. 오롯이 작품에만 모든 정신을 쏟아내는 진정한 예술가의 모습.

 

 

하녀 그리트는 어떠한가. 그녀 역시 그를 사랑하지만 감히 사랑을 꿈꾸지 못한다.

마지막에 그녀는 그의 작품을 위해 고통스럽게 귀를 뚫고 진주귀고리를 한다. 진주 귀고리는 그의 그림에서 ‘화룡점정’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화가의 부인의 것인 진주 귀고리를 하녀인 그녀의 귀에 걸므로 인해 그녀는 화를 당하게 될 것임을 충분히 알고 있다. 예상대로 그녀는 화가의 집에서 쫓겨나게 되고 꿈과 이상을 쫒던 행복했던 그리트는 현실 한가운데로 내던져진 그리트가 되고 만다.

 

 

진주 귀고리.

나는 ‘진주’라는 보석이 ‘눈물’을 의미한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성경속에 나오는 ‘귀고리’에 대한 의미가 떠올랐다. 신명기 15장에 보면 구약시대 ‘종을 대우하는 법’이 나오는데 15장 16-17절에, ‘종이 만일 너와 네 집을 사랑하므로 너와 동거하기를 좋게 여겨 네게 향하여 내가 주인을 떠나지 아니하겠노라 하거든, 송곳을 가져다가 그의 귀를 문에 대고 뚫으라 그리하면 그가 영구히 네 종이 되리라 네 여종에게도 그같이 할지니라.’ 라고 쓰인 구절이 있다. 즉 주인이 종을 풀어줬어도 그냥 주인과 함께 계속 살기를 바라는 종은 귀를 뚫어 그 종이 주인에게 영원히 예속되었음을 뜻하는 상직적 행위였다는 것이다. (새성경 각주 참고함)

 

 

나는 하녀인 그리트가 자신이 사랑하는 화가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아픔을 참아가며 자신의 귀를 뚫고(눈물을 흘리며), 또 그에게 직접 (대담하게) 귀고리를 채워달라고 했던 부분. 또 마지막에 화가가 죽기 전에 부인의 귀고리를 하녀 그리트에게 주기를 유언으로 남긴 것 등의 의미가 자꾸 되뇌어졌다. 마지막에 하녀 그리트는 남편이 있는 상황에서 그 귀고리를 가지고 있을 수 없음을 생각하며 결국 팔아버린다. 그리고 소설의 맨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

‘한 하녀가 비로소 자유를 얻은 것이다.’

 

 

커다란 사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숨막히는 설렘과 짜릿함을 안겨준 소설.

무덤 속에 있는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는 실제로 이 그림 속 소녀와 어떤 관계였을까.

무한한 상상을 해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읽기는 즐겁고 행복 할 수밖에 없다. *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