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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심학산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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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한 잎 2016. 2. 15.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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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학산(심악산과 천자지지)

 

교하면 동패리에 소재하고 있는 심악산은 한강하류에 있는 산으로 동편은 동패리,

서편은 서패리, 남편은 산남리등 3개리가 둘러 있다.

가운데에 우뚝 솟은 봉우리와 동체는 마치

대호가 옆으로 누워있는 형상인 것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물위에 떠있는 큰 군함같기도 하다.

또한 장군 영병 비룡상천형이라고도 한다.

산봉우리 주위는 바위로 둘러싸여 있으며 중심부 10여평 남짓한

편편한 곳이 있는 이 자리는 수십자를 파도 비세황토 흙이 나온다는 것이다.

바로 이곳이 풍수지리설로 천자가 나올 자리(천자지지)라 전해져

욕심내는 사람들은 밤중 남몰래 수차에 걸쳐 시체를 암매장하였다 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자리에 시체를 매장하면

산이 울며 동네에서 병고가 일어나 동네 사람들을 일제히 동원하여

상봉에 올라 시체를 파헤쳤다 한다.

조선조 말 김포에 살던 예안이씨 이지열이 이 마을에 들어와 훈학을 하였으나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이곳에 몰래 시체를 암매 장하였다.

그러자 이 동네에 사는 김면제 성균관박사 댁 하인이 일자무식한 사람인데

별안간 미쳐서 이지열이가 여기다 산소를 써서 큰일 났다며

동네를 뛰어다니자 동네 사람들이 산에 올라가 파헤쳤다.

이러한 연유로 인하여 지금은 아예 묘를 쓸 생각조차 못한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또한 이 묘자리 턱 바로 아래 발복지지 묘도 2개소가 나란히 있다 한다.

 

 

옛날에는 이 산 주위로 물이 흘러 한강 가운데 있는 섬으로 되어 있었다 한다.

그러므로 한강 물을 막고 있 다하여 당초에는 수막산으로 불리게 되었으나

조선조에 내려와 언제나 홍수가 있을 때에는 한강물과 조수물이 넘쳐

수막산이 물 속에 잠기게 됨으로 깊은 물에 들어갔다 하여 심악산이라 불리우게 되었다,

 

그리고 경기 오악(송악, 감악, 심악, 북악, 관악)중에 하나로 불리우고 있다.

그후 조선조 숙종대왕 시절 왕궁에서 학을 기르다가 학 두 마리가 도망을 치자

궁궐에서는 이 학을 찾기 위해 사방으로 수소문하여 찾으러 다니다가

심악산에 와 있는 것을 보고 잡아간 후 숙종대왕께서 이 산에서

학을 찾았다 하여 심학산으로 명명하여 부르게 되었다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항간에는 수막산으로 불리우고 있으나

각종 문헌에는 심악산으로 명기하고 있으며

이 심악산 동편 중턱에는 유명한 법성사 절이 있고

위에는 속병이 잘 낫는다는 신기한 약수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수시로 모여들고 있다.

또한 이 산은 조선조에 유명했던 송구봉선생께서

이 산의 정기를 받아 탄생하여 성장하신 명산이다.

따라서 일설에는 송구봉선생이 출생할 때 정기를 흡수하여

이 산에 초목이 일시 고사(枯死)하였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정상의 전망대

 

천자지지에 세워진 정자

 

 

 거북바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파주시 동패동에 소재한  심학산(심악산)은

옛날 경기 5악(송악, 감악, 심악, 북악, 관악)으로 유명한 산이다.

이 산은 상봉과 중봉(3태봉) 끝봉이 북에서 남쪽으로 나란히 솟아있는데

봉우리마다 자그마한 내령이 뻗어있다.

 산남리 47번지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노총각 송사련(안당정승서고모의 아들)이

어느 여름날 중봉상에 있는 거북바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아래 내령 거북뫼(고양 구산리)에서 두 마리의 청룡과 황룡이 올라와

자기 가슴에 안기어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인지라 이상하게 생각하며 하산하였다.

 

이날 밤 바로 이 동네 34번지에 살고 있는 안당 정승댁에 기고가 있어

일을 도와준 뒤 집으로 들어왔는데 비녀(연일정씨)가 제사음식을 가지고

홀로 있는 자기방으로 들어오자 설레는 마음에 욕정을 참지 못해

이를 겁탈 한 후 같이 살게 되었는데 당시 유명한 대학자 송익필, 송한필을 생산하였다 한다.

 

심학산과둘래길

심학산 둘레길
둘레길·등산로 어우러진 트레킹 코스...몸과 마음 뻥 뚫려


 
파주시 교하읍 동패리와 서패리에 길게 자리를 틀고 있는 산, 심학산.
그 이름의 유래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숙종 시절 왕궁에서 기르던 학이 도망쳤는데 수소문 끝에 이 산에서 찾았다 하여 찾을 심(尋), 학 학(鶴) 자가 붙여졌다고 전해 내려온다.
높이는 동네 뒷산이라고 불리어도 좋을 해발 194m짜리 야트막한 산. 요즘 이런 산은 산의 축에도 못낀다. 그러나 산은 높이로만 말하는 게 아니다. 산이 많은 곳에서는 동네 뒷산 취급받을 높이지만 평야지대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사방을 아우르는 전망대로서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는다. 심학산이 그런 산이다.
심학산은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자유로를 따라 북쪽으로 달리다 보면 한강을 바라보며 우뚝 솟아 있다. 주변에 산이 없어 이 산의 존재감은 훨씬 부각된다. 그러나 심학산의 존재감은 올려다보는 것이 아닌, 정상에서 내려다볼 때 한껏 빛을 발한다.
심학산 정상에 세워진 전망대에 올라서서 아래쪽을 바라보면 한강의 물줄기가 눈앞을 굽이굽이 돌아나간다. 날씨만 좋으면 인천대교나 오두산 통일전망대 더 나아가 북한까지 눈에 잡힐 듯이 가깝게 보인다. 겨우 192m 밖에 되지 않는 산의 조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심학산은 동에서 서로 길쭉한 모양이다. 정상은 서쪽의 중심에 솟아 있다. 동패리 교하배수지에서 정상까지는 능선을 따라 등산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어른 셋이 나란히 걸어도 좋을 만큼 길이 넓다.
국내에서 트레킹을 하기에 가장 좋은 산 중의 하나이지 싶다. 그래서 만든 것이 둘레길이다. 심학산 둘레길은 2009년 가을에 완공됐다. 심학산을 한 바퀴 도는 이 길의 총길이는 6.8km. 2시간이면 넉넉하다.
정상까지 750m라는 이정표를 확인한 뒤 걷기 시작했다.
심학산 둘레길을 거쳐 오르는 정상까지는 40분 정도여서 가족과 부담 없이 오르기도 좋은 편이다. 산의 7부 능선을 따라 길이 조성돼 오르막과 내리막이 그리 힘들지 않다.
정상인 낙조전망대에 오르자 동서남북 사방이 뚫려 있다.
가로 막은 게 없으니 보일 수 있는 것은 다 보인다. 동쪽으로는 굽이친 한강 물줄기가 임진강과 만나는 장면이 가히 장관이다. 파주와 일산, 김포의 넓은 들판과 그 사이 사이 성냥갑 아파트들도 눈에 들어온다. 정상의 조망은 시원하기 그지없다.
몸과 마음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정상 일대는 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넓다. 펜션바로위는  누구라도 걸음을 멈추고 들렀다 가는 곳이다. 이곳 앞마당에는 높이 13m의 거대한 약사여래대불의 온화한 미소가 가부좌를 틀고앉아 있다.  약천사를 지나면 아늑한 숲길이다. 여전히 오르막과 내리막이 거의 없는 부드러운 길이다. 산을 내려와 10분쯤 가면 갈림길이 나온다.걷기를 마치는 순간, 일상에 지친 영혼을 정화시켜준 심학산에 대한 고마움이 새록새록 샘솟을 것입니다.             이석희님의 편집해서 올립니다.

출처 : 안테나하우스
글쓴이 : cosmos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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