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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규의 동심론 <태초에 동화가 있었다>

작가들의 책

by 순한 잎 2013. 5. 20.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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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동화가 있었다> (현암사) /박윤규

 

박윤규 선생님의 동화창작에 관한 이론서 <태초에 동화가 있었다> 책을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이 분은 문학 뿐만 아니라 종교, 철학, 역사 등 지식이 해박한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세상 진리와 우주의 원리를 훤하게 꿰뚫고 있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책의 앞부분은, 동화와 아동문학에 대한 정의 및 아동문학의 잘못된 인식 왜곡등을 사례와 함께

지적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여느 이론서들과 특별히 다른 점은 느껴지지 않았다.

여기까지 읽고 대충 책을 덮는 오류를 범하지 말길 바란다.

이 책의 진짜배기는 그 다음부터니까.

 

나도 거기까지 읽고 책을 덮은 뒤 도서관을 나왔었다. (대출 정지된 상황이라 책을 빌릴 수 없었다)

그러다 며칠 전 다시 그 책을 빌려와 읽었는데 완전 푹 빠진 채로 재밌게 책을 읽었다.

이론서가 재밌다니! 이론서는 딱딱한 책 아닌가?

맞다. 이 책도 분명 딱딱하고 심오하기까지 하여 결코 쉬운 책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나는 깊이 몰입이 된 채로 너무나 맛있게 읽었다. 맛있어서 접시까지 싹싹 핥은 느낌?

 

한마디로 진리를 명쾌하게 짚어내, 확고한 이론으로 정리해 놓은 책이다.

박윤규의 '동심론'이라는 이론은 무릎을 탁 치게 만들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이전에 읽었던 이론서들과는 분명 달랐다. 한마디로 제대로 된 이론서다.

문학에 대한 보편적 진리와 함께, 아동문학의 핵심인 '동심' 을 아주 독특하게 풀어내고 

있으며, 이전에 알지 못했던 세상의 진리마저 깨우쳐주는 느낌이다.

 

특히 첫째마당 동화창작의 원론 부분에서 3강 4강 5강은 꼭 읽어봐야 할 부분들이다.

3강 : 태초에 동화가 있었다 -동화장르론

4강 : 생명과 창조의 원천 -동심론

5강 :재미-감동-승화 -문학 감상과 창작의 3단계

 

이 책은 동화작법의 기교, 기법에만 머무르는 게 아닌, 우주의 기본 원리와 인간의 본질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숫자 3에 들어있는 이치와 의미부터 알아야 본격적인 동심론에 들어갈 수 있다.

그가 말하는 동심론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3에는 어떤 비밀이 있는가? 주역을 풀 때 3은 인간의 수이다.

우주 구성의 요체인 천지인(天地人) 三才를 수로 표현하면 하늘은 1, 땅은 2, 인간은 3이다.

태초에 하늘은 제1시인 子時에 열리고, 땅은 제2시인 丑時에 생겨나고, 사람은 제3시인

寅時에 태어났다고 한다.이 3수의 원리가 인간사회를 이끌고 지배한다. 동양 뿐 아니라 서양의

피타고라스의 묘비에도 우주 구성 원소는 물론 운행 원리도 3으로 구성되어 있음이 적혀있다 한다.

다시 말해, 우주 구성의 요체인 천지인(天地人)은 영혼육을 말한다

 

사람은 영-혼-육, 이 셋의 연합체라서 여기서 어느 것 하나 빠질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영.혼.육'의 본질은 무엇일까?

성경 창세기를 제대로 해석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육체를 지으시고 그 코로 영(靈,spirit) 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산 혼(魂,soul) 되었다.'


'영' 은  '하늘' 그 자체다. 하늘에서 영을 짓고 그것을 땅에 내려보내 육신을 입게 하는 것이 순서인 것이며,

최초의 사람은 육신을 입은 사람이 아니라 영이 더 먼저라는 것이다.

영은 천지인 삼재 가운데 하늘의 요소이며 그 존재의 본질은 바로 빛이다.

이 빛은 생명의 근원이 되는 원초적 빛인 것이다.

영은 하나님의 빛이고 사람은 이 빛으로 지어졌다. 빛의 세계가 하늘나라 본향이다.

그러므로 영은, 속성자체가 하느님처럼 영원불멸하며 선악도 없이 맑고 밝은 존재이다.

 

'혼' 은 한자를 풀면 '마귀가 말한다'는 뜻으로 삼재 가운데 인간에 요소이며 그 존재의 본질은 기(氣)다.

기란 물질과 빛의 중간 실체이며 그 둘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물질은 기로 인해 생명 운동을 하게 되고 靈 역시 기의 도움을 입어 빛이 강화된다.

그러므로 기가 흩어지거나 고갈되면 사람은 영과 육이 분리되어 죽는 것이라 한다.

 

'육(肉)'은 삼재 가운데 땅(地)에 해당된다.

작게는 인간의 몸뚱이이고 크게 보면 현상계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주를 둘로 나누면 초현상계(형이상계)는 하늘이 되고, 현상계(형이하계)는 땅이 된다.

그 사이에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주의 원리와 인간의 구성원리를 말할 때

이 천지인( 영-혼-육)을 빼놓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석 유영모 선생의 이야기를 인용한 부분도 눈에 띈다.

'영은 곧 불가의 佛性, 유가의 性이고, 힌두교의 아트만이며, 도가와 선가의 道心으로서, 이는

모두 하나이며 그 근원은 하나님이며 그 씨앗이 사람에게 태생적으로 심겨 있다'   

 

또 하늘이 인간에게 고루 삼진을 주셨으니 곧 성명정(性命精)이다.

성은 하늘 본래의 성품이니 마음을 낳고, 명은 하늘로 부여받은 목숨이니 기로서 유지되고

정은 육신의 근원이이 신체를 형성하게 된다.

삼진과 삼망에 대해서도 설명을 하는데

삼진은 참되고 참망은 망령된 것으로 보는데, 삼진은 순일한 것이며 삼망은 선악, 청탁(맑고 탁함),

후박(두터움 얇음)이 공존하는 것이라 한다.

동심엔 이 두가지가 섞여있는데 아이들이 맑고 천진함 뿐만 아니라 악한 마음도 갖고 있는 것은

이 삼망 때문이란다.

 

영은 원초적 빛으로 영원불멸하고, 혼은 기가 소진되거나 육신이 작동을 멈추면 사라진다.

이때 육신은 지기와 연합하여 땅으로 돌아가고 혼은 천기와 연합하여 각각 자연으로 환원되니,

곧 죽음이다. 영은 빛의 세계인 하늘로 돌아가니 사람의 죽음을 짐승과 달리 돌아간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기독교,불교, 도교, 선도 등 모든 종교를 망라하여 진리를 드러내는데 대종교 경전인

<삼일신고>의 '진리도' 그림도 인용하면서 결국 우주 원리 속의 인간의 구성은 같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럼 이제껏 설명한 영 혼 육이 동심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이 책에서는 동심을 원형적 동심과 현실적 동심으로 구분을 한다.

'원형적 동심'은 '영'에 가까운 동심이며, '현실적 동심'은 '혼'에 가깝다.

이 두 가지의 구분은 순수동화와 사실동화(아동소설)을 구분짓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원형의 동심은 순수동화의 세계와 같고 현실적 동심은 아동소설에 가깝다.

 

결국 동심은 곧 하늘이며, 동심의 본질인 영에 다가가려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이며

동화의 지향점이다.

 

 

   육             혼           영

육체적         칠정       깨달음

재미            감동        승화 

 

단순하게 표현했지만 이 책의 핵심은 바로 위와 같이 정리된다. (어렵게 느껴지지만 책을 읽으면

무슨 말인지 다 이해가 된다.)

 

우리가 작품을 쓸 때도 위의 세 가지 구조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동화는 재미가 있어야 하고 감동이 있어야 하며

그 감동을 넘어서서 승화의 단계까지 가야만 제대로 된 문학의 길인 것이다.

이 말은 먼저 재미(육)로 관심을 이끌어내고 그것이 깊어져 혼의 변화를 일으키면 감동이 되고 (혼)

이윽고 영이 밝아져 깨달음에 이르거나 성향이 변화되면 승화라 할 수 있다 (영)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고 싶은 부분이 너무 많았다.

특히 작가가 독자를 승화의 단계까지 이끌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

(몇 부분 그대로 옮겨보겠다)

 

-무단히 자기를 갱신하는 수양을 하지 않고서는 결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인식도 창조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만일 그것을 허투로 꾸며서 전망을 제시하면 거짓 선지자와 같이 혹세무민하게 될 것이다.

 

-작가는 관념과 이상을 그럴싸한 이야기로 엮어내서는 안된다. 그것은 지적 사기이다.

작가는 먼저 스스로 갈고 닦아 자신이 가려는 세계에 대한 확증을 갖고서야 그것을 형상화 해야 한다.

 

-분명히 모르는 세계라면 그저 방향만 제시하고 독자 스스로 찾게 하거나 생각하게 하도록

남겨 두는 게 옳다. 작가는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지 대답을 제시하는 사람은 아니다.

 

'문학이 구도의 길이요, 문학에 도가 있다.'

 

-아동문학의 주제에 관해,

당의정 - 너무 써서 먹기 거북한 약을 단것으로 싸서 먹는 특수한 비방. 문학이란 바로 재미와 감동이라는

당분으로 도포한 약 (주제, 철학, 깨달음)이다.

로마의 시인 두크레티우스가 명명한 이 설은 문학의 효용성을 설명하는 가장 오래된 이론이다.

위험한 당의정- 비극적 주제나 회의적이고 암울한 주제의 작품들.

(아동에게 온전히 밝고 희망적인 동심을 심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학에서 주제란 드러나서는 안되는 나무의 뿌리와 같다고 말하면서 박윤규 선생님이 지은 시

<거울 속의 요정> 이 소개됐는데 매우 적절한 비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밖에도 소재의 발굴부터 인물 창조, 표현하는 방법 등 창작의 실제를 다룬

 <동화창작 각론>, <동화창작의 실제>부분도 상당히 많은 지면이 할애되어 있어

공부하는 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이 책의 백미는 '재미 -감동- 승화' 이 세 단계를 통한 창작원론을 이야기 한 부분이라 생각된다.  

이 외에도 예시로 들은 여러 문학작품과 주변 이야기들이 지적 궁금증을 채워주어 개인적으로

재밌게 읽혔다.

 

책읽기의 즐거움이란 바로 알고자 하는 것을 채워주는 충만감, 그리고 무릎을

탁 치게 만들 정도의 깨달음을 주는 것이 아니던가.

박윤규 선생님은 대학생 때 시가 당선되었다고 하니 문단으로는 큰 선배님이다.

하지만 현재 나와 같은 동화작가이고 나이도 나랑 비슷한데...어쩜 이렇게 나와는 한 차원 높은

분처럼 느껴질까.

학문의 깊이도 깊을뿐더러, 우주와 인간에 대한 철학적 탐구가 완전하게 이루어진듯 한,

그리고 사물을 꿰뚫고 있는 듯한 식견을 가진...참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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