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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갓일 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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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한 잎 2015. 8. 14.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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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일 김인

 

 

    


 

 

한국의 갓은 무엇보다 가볍고도 무거운데 그 특징이 있다. 인류가 만든 모자 가운데 갓만큼 가장 가볍고 가장 엄숙하면서도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도 없을 것이다. 갓이 표현하는 의미는 실용성도 심미적인 장식성도 아닌 일종의 점잖음을 보여주는 도덕성이다. 갓 쓰고 망신당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그것은 쓴 사람의 인격이나 정신을 표현하는 언어, 하나의 기호이다. 남자의, 선비의, 양반의 시니피앙(signifiant: 기표)으로써 사람 전체의 몸을 기호로 바꿔놓은 작용을 한다() , 그것은 한국인의 이념이 물질 그 자체로 응집되어 있는 머리의 언어이다.

-우리문화 박물지(이어령 저, 디자인하우스, 2007)

 

 

, 쓴 사람의 인격과 정신을 표현하는 언어

 

갓으로 불려지는 흑립(黑笠)은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백의(白衣)와 대비되어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신분을 상징하고 있다. 전통사회의 성인남성의 격은 갓을 갖추어 썼을 때라야 비로소 완성된다. ‘의관을 정제한다는 말처럼 평소에 성인 남성이 바깥출입을 할 때 의례 도포와 갓을 갖추어 쓰게 마련이었다. 방을 나설 때부터 착용하여 실내에서도 벗지 않았을 뿐더러 돌아와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 비로소 벗는 것이 상례였다. 흰색 도포자락에 짙은 먹빛의 반그늘이 지는 갓이 절제되지만 서로 절묘하게 어우러져 갖춰 쓴 이의 품격을 유감없이 대별할 수 있었다.

 

성인 남성의 필수품

 

갓은 고려시대에 서민들이 즐겨 쓰던 패랭이 (平凉子)에서 유래되어 조선시대에는 한층 양식미를 갖춘 공예품으로 발전하였다. 갓을 제작하는 공정은 크게 세 가지 기능으로 구분한다. 우선 갓 대우(대우는 갓의 모자 부분을 일컫는 순수한 국어로서, 모정아[帽頂兒]라고 부르기도 한다)부분을 말총으로 엮는 총모자장(驄帽子匠), 대올을 실낱처럼 떠서 차양부분을 얽어내는 양태장(涼太匠), 총모자와 양태를 조립하면서 명주를 입히고 옻칠해 완제품을 만들어내는 입자장(笠子匠)이 그것이다. 이 세 기능은 서로 재료가 다르고 솜씨의 격차가 심하기 때문에 생산지를 달리하거나, 혹은 한 공방에서 분업적인 협동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총모자장, 양태장, 입자장의 기능을 일괄해 갓일이라는 명칭으로 묶어 국가에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한 것이다. 물론, 그 용어가 전래의 것은 아니며 제작소 내지 판매점을 갓방(笠房)이라 부를 뿐, 전 공정을 통괄하는 일의 명칭은 따로 없었던 듯하다.

 

지금의 갓은 대체로 조선시대 전기에 정형화되고 그 사용이 점차 일반화되어 사류(士類)의 가장 애용하는 바가 되었다. 동국의관(東國衣冠)은 갓과 도포(道袍)를 말하는데 그 양식미는 세계의 어느 의관보다도 우월하다고 하겠다.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직전까지 우리나라의 성인 남자들은 평상시에 도포에 갓을 갖추어야 비로소 문밖출입을 할 수 있었다. 각지의 명산지에서 제작과 판매를 담당하고 시장에서도 판매하였기에 도매상과 소매상이 전국을 누비던 것이 당시의 풍경이었다. 그러나 값이 워낙에 비싸서 낡았다고 하여 쉽게 새것으로 바꿀 엄두가 나지 않는 물건이기도 했다. 따라서 구멍이 나고 헤져도 부분적으로 수리해 쓰는 것이 일반화된 습관이어서 지방에는 곳곳에 수리공이 성업하기도 했다. 그러나 단발령이 내리고 의습이 서구식으로 바뀌고 난 뒤에는 지방의 노인들 말고는 찾는 이가 급격히 줄면서 갓일도 침체일로에 접어들었다. 갓일은 196412월에 중요무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었는데, 문화재보호법이 생기고 가장 먼저 지정한 공예기술 분야로 기록된 것도 이런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김인 선생은 스승인 오송죽 선생의 뒤를 이어 보유자가 되었고, 90세의 고령에 달한 2009년에는 평생을 전업으로 몰입해 왔던 공로를 인정하여 명예보유자의 반열에 올랐다.

 

갓일의 제작공정

 

갓일은 갓을 만드는 과정 전체를 말하지만, 갓을 완성하는 데는 총모자, 양태, 입자 분야의 기술이 협업을 통해서만 완성할 수 있는 특성이 있다. 김인 선생은 이 가운데서도 총모자 분야의 기능보유자이며, 말꼬리 털 또는 목덜미털을 써서 컵을 엎어 놓은 듯한 형태의 갓 모자 부분을 담당한다. 양태장은 대나무 오리를 가늘게 쪼개어 모자의 차양부분에 해당하는 양태를 제작하고, 이 두 가지 부품을 하나로 모아 갓을 완성하는 기능이 바로 입자장의 영역이다.

 

제주지역의 보유자, 한라 문화축제나 섬축제 등에 빠짐없이 참여

 

김인 선생은 제주시 도두동 출생으로 반농반어형 가정에서 1920216일에 태어났다. 젊어서는 해녀 일을 주로 하였고, 1970년대 초까지는 가내 수공업으로 총모자를 만들기도 했다. 선생은 제주 1세대 보유자인 오송죽 선생과 함께 기거하면서 다시 총모자 일을 재개하였고, 재료와 연장을 완벽하게 다루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솜씨가 좋다는 평을 줄곧 들어온 선생은 머지않아 총모자 제작 분야에서도 일가를 이루었다. 멀리서도 선생의 작품을 찾는 이들이 점차 늘면서 선생의 명성도 자연스럽게 알려지게 되었고 마침내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4호 갓일의 총모자장으로 인정되었다. 김인 선생은 평소의 품성이 밝고 따뜻하며 친화력도 좋아서 자랄 때부터 집에는 항상 또래의 친구들이 대여섯 명씩 모여 들었다고 한다. 제주 지역의 보유자로서 한라 문화축제나 섬축제 등에 빠짐없이 참여하여 이 지역 말총공예의 진작에 노력하였다. 90세의 고령에 달한 2009년에 평생을 전업으로 몰입해 왔던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보유자의 반열에 올랐다. 현재 선생의 총모자 제작기술은 딸인 강순자(1946년생) 선생이 전수받아 20099월에 중요무형문화재 갓일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어 대를 이어 활동하고 있다.

 

김인 선생의 작품은 모두 과거 전통사회의 갓의 풍모와 가장 근접한 형식미를 갖추었다는 평이다. 단순한 형태를 세련되게 완성하는 일이 오히려 복합한 형태를 만드는 이보다 어렵다고 한다. 단순한 형태는 기능의 숙련도와 작품의 밀도가 일치하지 않으면 결코 높은 평가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평생을 하루같이 한길만을 걸어온 노장인의 모습은 차라리 한 사람의 구도자의 풍모에 가깝다. 이것이 우리가 존경해 마땅한 참 장인다운 길이다.

 

말총 : 갓의 대우 부분에 사용되는 재료다. 대우를 만들 때 날줄은 길이가 긴 말총을 많이 사용하고 길이에 구애를 받지 않은 절임줄은 쇠꼬리털을 많이 사용한다.

 

일골 :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전체적인 형태는 아래가 넓고 위는 사다리꼴처럼 줄어드는 변형 원통의 모양이다. 뒤집어 보면 윗면쪽은 막혀 있지만 바닥쪽은 바깥부분의 2cm, 안쪽으로 7.2cm정도 깊이의 둥근 홈이 패어 있다. 이렇게 패인 곳은 주개판 위에 올려 놓고 대우를 엮어가는 작업을 하기 쉽게 하기 위함이다. 일골의 표면에는 어교가 묻어 있는데 말총으로 연결하여 모자의 시작 부분에 해당되는 생이방석을 만든 다음 결어갈 때 불에 녹여서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골걸이 : 총모자를 결을 때 주개판 위에 일골을 돌려가면서 짤 수 있도록 만들어져서 판의 꼭대기는 둥글게 굴려져 있다. 주개판 위에 일골을 걸었을 때, 일골 안쪽에 패인 홈이 주개판 위에서 빙 도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양자 사이의 빈 공간에는 헌 헝겊을 넣어 메우는 역할을 한다.

 

이외에 일골 위의 말총을 한 코씩 잡아채서 새뜨기를 할 때 사용하는 총바늘과 먹칠을 하기 위해 사용하는 먹골과 석죽, 먹사발과 먹솔 등이 사용된다.

 


출처 : 오디오와 컴퓨터
글쓴이 : 관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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