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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년을 맞아

이슈&사는 이야기

by 순한 잎 2015. 4. 18.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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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시]

 

 

일년  /  김사인

 

1.

일년은 별 하나가 태어날 시간 한 우주가 태어나 피었다가 사라질 시간

감나무마다 수천의 새잎 돋고 흰 감꽃 사이로 수백의 어린 감들 이쁜 푸른 엉덩이를 내밀 시간

수천 마리 벌 나비 앙앙거리고 뾰족한 주둥이 꽃가루 칠갑을 하고 어른이 될 시간, 되어 다시 제 새끼를 낳을 시간

수백만 마리 개미들 하루 한알씩 모래를 물어날라, 그것으로 굴뚝만한 집 한채를 올릴 시간, 그 집 다시 허물어질 시간

갓난애기가 일어나 걸을 시간, 방긋 웃다가 엄마 하고 소리가 터질 시간

아아,

일년은 일년은

슬픔 깊어져

깊어진 슬픔이 새로 슬픔의 자식을 밸 시간 슬픔의 손주며느리를 볼 시간

죽은 친구 죽은 아내 죽은 나조차 까마득히 잊을 시간, 잊고도 남을 시간, 일년은.

 

2.

더는 바라지 않아요.

실컷 울게 해주세요.

시끄럽다고 말하지 말아주세요.

- 당신의 딸 아들

당신의 조카 당신의 손주들

마음놓고 울 수 있게만 해주세요.

창자가 끊어지도록

울다가 숨이 넘어갈 때까지

실컷 울게 해주세요.

이것은 당신의 딸과 아들

당신의 손자 손녀들을 우는 통곡

봄꽃 고와 섧고 또 설운 우리를

바람만 불어도 울음이 나는

밥을 먹다가도, 오줌을 누다가도 울음이 터지는 우리를

지겹다고 말아주세요.

제발 돈봉투로 모욕하지 말아주세요.

- 당신의 딸 아들

당신의 조카 당신의 손주들

 

3.

곁에 있어주세요 못다 핀 꽃들을 위해.

돌아오지 못한다면 떠날 수라도 있게 해주세요 울어주세요.

이 굴레를 벗게 해주세요. 길을 일러 주세요.

하기조차 싫은 생각을 그래도 마주하도록 용기를 주세요.

물위로 지는 꽃잎들이 한없이 무겁고 슬픈 계절

내 마음을 바로 보는 것은 너무 아프고,

희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말은 이루어지지 않고,

지난봄의 민들레 씨앗들이 돌아오게 해주세요.

별이 다시 반짝일 수 있게 해주세요.

달이 다시 차오르도록 해주세요.

희망을 주세요. 결혼식장의 젊은 부부들을 진심으로 축하하게 해주세요. 태어날 아기를 축복하게 해주세요. 내일을 기다리게 해주세요. 이웃을 믿게 해주세요, 당신을. 당신들을 미워하지 않게 해주세요.

다음 계절의 별자리를 기다리게 해주세요 부디.

 

 

*시를 쓰는 과정에 동덕여대 문창과 시교실의 2학년 학생들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김사인 : 시인·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

 

한겨레. 2015.4.17. 

 

일년___김사인.e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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