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못에 끝없이 동그라미를 그리는
달 탐닉자일 뿐."
라포르그의 [삐에로의 말]의 첫 구절이라고 내가 기억하는 싯귀이다
아마도 내가 틀리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라포르그를 읽은 지가 오래되서 정확히 저런 표현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하고
불어도 모르는지라 번역이 제대로 된 건지도 나는 알 수가 없다
나는 그냥 저 표현이 무척 좋다 - 틀렸다 하더라도
우연히 무척 마음에 드는 삐에로의 이미지를 한개 구했는데
아쉽게도 싸이즈가 너무 작아서 형체도 애매하고
사진인지 그림인지 도대체 구분이 안되는 상태였다
그래도 그 이미지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삐에로 부분은 그 구도 그대로 그려보았다
[달에 홀린 삐에로 (Pierrot Lunaire)]는 벨기에의 시인이 프랑스어로 쓴 연작시집인데
그걸 독일어로 번역한 텍스트에 쇤베르크가 곡을 붙여 유명해졌다
19세기말 당시 서유럽과 오스트리아에 팽배해 있던 데카당스에다 초현실주의가 가미된 가사에다
쇤베르크의 무조음악이 절묘하게 붙여진 이 곡은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이나
[어린 양치기]를 극단으로 끌고간 느낌을 준다
자연적인 조성의 철저한 파괴는 - 기괴하고 돌발적이고 절망적이면서도 몽롱하고 우스꽝스런 - 가사와
딱 어울리는 분위기를 만들어 내어 오래 전 처음 들었을 땐 정말 신선하고 놀라웠다
그렇지만 드뷔시는 하루종일 들어도 질리지가 않는데 [달에 홀린 삐에로]는 두 세번 듣고는
지쳐버려서 그 뒤로 다시는 전곡(30 ~ 40분 분량)을 듣지는 않고 있다
어쩌다 내키면 짧막한 첫번째곡 [달에 취하여 (Mondestrunken)]정도만 듣곤 한다
16세기 무렵 이탈리아에서 (물론 언제나 이탈리아에서 시작된다)
코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 Arte)란 형태의 즉흥연극들이 공연되기 시작했는데
우리말로 하면 "기교의 희극" 내지는 "(기술적인) 예인들의 희극"이라고 한다
여기서 기술적이란 노래 춤 연주 연기 아크로바트를 전문적으로 훈련받았다는 것을 뜻한다
아를레키노(Arlecchino, 주연)와 페드롤리노(Pedrolino, 작은 페드로, 아를레키노의 보조역)는
이러한 즉흥연극에 출연하는 캐릭터들이다
코메디아 델라르테 형식이 프랑스로 전파되면서 아를레키노는 아를깽(Arlequin)
페드롤리노는 삐에로(Pierrot, 페드로가 프랑스식 이름으론 삐에르(Pierre)니까)로 이름이 바뀌게 되고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전파되었을 땐 아를깽은 할리퀸(Harlequin)이란 영국식 이름을 갖게 되었다
조사해 보진 않아서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삐에로는 아마도 영국까지 가지는 못한 것 같다
만약 아를깽과 함께 삐에로도 영국에까지 소개되었다면
피터링(Peterling)이나 피털릿(Peterlet) 비슷한 이름을 갖게 되었을텐데 그런 이름은 못 들어봤으니까.
공연의 형식도 많이 바뀌어서
이탈리아에서 시작될 초기에는 완전히 관객의 반응에 따라 관객과 함께하는 즉흥극의 형식이었는데
프랑스에 가서는 어느정도 판토마임 형식을 취했다가 영국에 가서는 완전히 판토마임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떠들석한 즉흥극에서나 판토마임에서나 주연은 아를깽이었고
삐에로는 주로 아를깽에게 무시당하고 조롱당하고 이용당하는 역이었다
그런 이유로 삐에로는 점점 우수에 찬, 사랑에 번민하며 주저하는 모습을 띄게 되었다
아를깽은 가면을 쓰고 옷도 화려한 무늬가 들어간 알록달록한 광대복을 입는 반면
삐에로는 그냥 하얗게 분장만 하고 옷도 주로 흰 단색으로 수수하게 입었다
내가 구한 삐에로 이미지에서도 옷이 하얀 단색이었지만
내 멋대로 이것 저것 색깔을 넣어 보았다 (사실은 하얀 단색이 꽤 어려운 색깔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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