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그가 주고 간 선물 (소설가 김중혁)

이슈&사는 이야기

by 순한 잎 2009. 5. 30. 09:53

본문

그가 주고 간 선물

 

말(言)이 칼이 되고 덫이 된다. 말이 길면 꼬리 잡히고, 허술하면 조롱당한다. 쉽게 말했다가는 크게 당하고, 생각 없이 말했다가 걱정만 떠안게 된다. 말 한 번 꺼내기 쉽지 않은 시대다. 우리 시대의 잘 말하는 법이란, 남에게 책잡히지 않는 기술뿐이다. 조선 후기 문장가 홍길주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 말이고, 그 말을 간추린 것이 글”이라 했다. 이어 “마음에서 나오지 않은 말은 거짓말이고, 말에서 얻지 못한 글은 가짜 글”이라 덧붙였다. 간단하다면 간단한 이야기다.

 

어떤 글이든, 써 본 사람은 안다. 지우고 붙이고 고치고 채우면서 한 줄의 글을 완성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한 줄의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말들을 머릿속으로 중얼거려야 하는지, 써 본 사람은 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말이 필요한데 그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 서거, 라는 말을 쓰지만 나는 돌아가신 것 같다. 그분은 이곳 사람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뚝 떨어진 사람인 것 같다. 어딘가에서 뚝 떨어졌다가, 다시 어딘가로 뚝 떨어져 가셨다. 잘 돌아가셨길 빈다. 그 길이 맞길, 그 낭떠러지 길이 제대로 된 길이었길 빈다.

 

나는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좋아했다. 그의 말들이 좋았다. 내용도 좋았지만 그보다 그의 방식을 더 좋아했다. 그는 말 없는 사회에서, 말 꺼내기 힘든 사회에서 늘 말을 했다. 그는 형식적인 말은 하지 않았다. 우리가 오랫동안 들었던, 텔레비전만 켜면 정치인들이 늘 해댔던 공식적인 말, 판에 박힌 말, 하나 마나 한 말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공격받았고 오해받았지만, 그게 그가 말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그 방식을 좋아했다. 그는 조리있게 잘 말하기보다 마음을 전달하는 데 애썼다. 칼을 피하는 말로는 마음을 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게 되었을 때, 나는 친구와 술을 마시면서 지난 5년 동안 어딘지 모르게 한국 사회가 바뀐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뭐가 바뀐 것인지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뭔가 바뀐 것 같다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신 지금, 오랜 시간 텔레비전에서 그의 모습과 사진과 말들을 듣고 보면서 나는 그게 뭔지 어렴풋하게 알 것 같다. 우리는 노무현이라는 대통령 덕분에 조금은 더 쉽게 말할 수 있었고, 더 많이 말할 수 있었다.

 

검사와의 대화에서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한 검사가 토론으로 자신들을 제압하려는 의도가 아니냐고 이야기하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잔재주나 가지고 상대방을 제압하려고 하는 인품의 사람으로 자신을 비하하는 데 모욕감을 느낀다고 했다. 대통령은 토론을 원했지만 누구도 대통령을 토론의 상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대통령도 토론의 상대가 될 수 있다고, 그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대통령에게 말을 걸어도 괜찮다고, 그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퇴임 후에는 홈페이지에 글을 적어, 함께 토론하자고 말을 걸어왔다. 지금까지 누가 그렇게 말했던가. 우리는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통해 권위가 사라진 진짜 글과 말을 배웠다. 대통령과 말하는 법을 배웠다.

 

우리는 이제 진짜 말과 가짜 말을 구분할 줄 안다. 마음으로 하는 말인지 아닌지 다 안다. 우리의 말을 전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써야 하는지도 안다. 그게 노무현이라는 한 사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역할이 컸다. 그가 우리에게 주고 간 선물이다. 우리는 더 쉽게 말할 줄 알게 됐고, 더 자주 말할 수 있게 됐다. 우리는 달라졌고, 앞으로 더 달라질 것이다. 지금의 대통령도, 앞으로의 대통령도 이걸 잊어선 안 된다.

 

한겨레신문 칼럼.  김중혁 소설가 .

 

 

* 김중혁 소설가의 글을 읽으면서 시원했다.

  위선과 허위로 가득찬 말보다 마음이 담긴 노무현 님의 말 한마디가 나도 좋았다.

  그동안 그는 '말' 때문에 얼마나 말꼬리 잡히고 조롱당했나.

  그의 말은 판에 박힌 말이 아니었다. 쉽고 솔직했다. 때론 후련했다.

  그리고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좋았다.

  오히려 '노무현의 말'을 빌미로 끊임없이 말꼬리 잡는 언론이 가증스러웠다.

  말은 쉽고 진심이 베어 있어야 한다.

  어려운 말로 '체' 하지 말자. 꾸미지 말자.

 

 주일마다 교회에서 예배를 본다.

 교회의 장로님이나 성도 대표들이 나와 대표 기도를 한다.

 그들의 기도를 들으면 말이 지나치게 화려해서 어렵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면 꼭 저렇게 겉치레적이고 수사적인 말로 무장해야 하나..그런 생각 든다.

 말이 장황하고 길다. 

 소박한 알맹이 하나에, 지나치게 꾸미고 모양을 내니 길 수 밖에 없다.

 대형 교회일수록 그런 현상이 더 하다.

 아마도 많은 성도들 앞에서 대표 기도를 하니 그럴 듯해야 하는 모양이다. 폼이 좀 나야 하는 모양이다.

 말은 신중하게 하되, 진실된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한다.

 짧고 소박한 말 한마디가 오히려 오래도록 긴 여운을 주지 않는가.

  

  

 

'이슈&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1968년도 한국 칼라사진  (0) 2010.03.26
4대강을 제발 내버려 둬! (거짓 '4대강 살리기')  (0) 2009.07.16
헌화   (0) 2009.05.25
북카페 지구별소풍  (0) 2009.05.15
부처님 오신 날에  (0) 2009.05.03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