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조선식 화포
조선 초기의 화약무기 체계는 세종대에 이르러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는데, 중국의 양식에서 완전히 탈피한 새로운 조선식 화포가 개발되었다. 최무선이 개발한 화약을 사용할 수 있도록 중국식 무기를 개량한 조선식 총통(銃筒), 발사식 화살(箭)과 폭발물 등이 새롭게 개발되고 규격화되어 대량 생산되었다. 그 화포들 중에서 몇 가지 중화기는 탄환뿐만 아니라 한 번에 여러 개의 불화살을 발사할 수 있었다.
새로운 무기의 제작에 관련된 내용은 세종실록과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가운데 병기도설(兵器圖說)에 기록되어 있다. 당시 군기감제조(軍器監提調)로서 화약 제조는 고려 때 화약을 발명한 최무선의 아들 최해산(崔海山)이 주관하였으며, 화약 무기의 개발은 이천이 주도하였다. 이천은 최무선이 발명한 로켓 화살의 일종인 주화(走火)와, 그리고 나무통 속에 화약과 쇳조각을 넣은 질려포(藜砲) 등을 병선에 장착하는 방법을 개발하였다. 또한 조선식 대형포인 조립식 총통완구(銃筒碗口)를 개발했는데, 당시 사용하고 있던 대.중.소 완구가 모두 문제가 있어 실험연구 끝에 중소완구의 중간형 대신 대완구를 두 토막 내어 조립하는 방식의 대완구를 개발하였다. 조립식 대완구는 말이나 소로 운반하기 편리하였고, 화력 또한 우수했으며, 분해와 조립이 자유자재로 되어 야인과의 전쟁에서 큰 역할을 하였다.
이 때부터 포탄도 철제로 만들어 쓰기 시작하여 대포의 성능도 개선되었다. 천자철탄자(天字鐵彈子)라는 철제 탄환을 제조하여 사용했는데 이것은 천자총통(天字銃筒)에 사용하는 대포알이라는 뜻이다. 이 무렵부터 총통에는 크기 순서로 天, 地, 玄, 黃의 이름을 붙여 사용하였다.
세종 27년(1445)에 화기의 성능이 기존 화기의 2배 이상으로 향상되자, 세종은 일정한 규정 없이 조잡하게 만들어진 2만 여 문 이상의 기존의 화기들을 전부 폐기해 버린 뒤 새로운 제작 방식에 따라 화기를 전면적으로 고쳐 제작하게 하는 한편, 총통등록(銃筒謄錄)이라는 화기 교범서를 발간하여 화기의 규격 통일화를 추진하였다. 세종의 아들 문종은 화약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화약을 전국에서 공납(貢納)으로 받아들였고, 화차라는 신무기를 직접 창안하면서, 세종 말년에 시작된 새로운 화기의 대규모 제작을 완성시켰다.